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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ul 10. 2024

58. 후루룩 국수를 먹는다

별일 없는 일상

후루룩

부사 적은 양의 액체나 국수 따위를 야단스럽게 빨리 들이마시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장마가 시작되고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밤새 많은 비가 내려서 아침에 출근하는 길이 한껏 물기를 머금었다. 오래전에 사두었던 장화를 꺼냈다. 오늘은 비가 많이 오니까 장우산을 챙겨야지. 아침은 힘들지만 비 오는 풍경은 좋아하니까 조금은 기쁜 마음으로 출근을 한다. 비가 내리면 곱슬머리는 더 부풀어 오른다. 머리를 질끈 묶고 빨간 장우산을 쓰고 물웅덩이를 찰박찰박 발로 차며 사무실로 걸어간다. 손바닥을 우산 밖으로 내밀어 빗물을 만져본다. 사무실로 들어가면 또다시 지루한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잠시 걷는 이 시간을 즐기기로 한다.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방문객이 많지 않다. 전주에서 사 온 초코파이와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며 오전시간을 여유롭게 보냈다. 비가 내려서 산책을 나가지 못할 것 같아 조금 시무룩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비가 그쳐서 잠시 산책을 나갔다. 산책길에 홀로 피어있는 해바라기를 발견했다. 해바라기를 보기 위해 가까이 갔다가 그 옆에 배롱나무도 있어서 혼자 콩콩거리며 사진을 찍고 구경했다. 앞은 보지 않고 해바라기만 보며 걷다가 우당탕탕 자빠지고 말았다. 정말 철퍼덕 바닥에 처박혔는데 함께 처박힌 휴대폰을 후다닥 챙겼다. 무릎과 발목, 손목, 팔꿈치까지 시큰거렸지만 휴대폰을 챙기는 내 모습이 웃겨서 아픈 줄도 몰랐다. 다행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기적 일어나며 "아야야.." 혼잣말을 하는 내가 참 바보 같고 한결같다. 다리엔 온통 상처뿐인데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진중하고 우아해질 수 있을지...(불가능하다. 난 귀여운 할머니가 될 거니까.)


사무실로 돌아와 다시 일을 한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오이와 김치를 꺼내 얼마 전에 봐둔 김치물국수를 만들었다. 후루룩 국수를 먹고 오늘의 필사를 하고 책을 읽었다. 오늘의 글을 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별일 없는 보통의 하루가 지나간다. 매우 행복하지도 아주 슬프지도 않은 그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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