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리 Jul 11. 2024

59. 큰일이야

더 이상 쓸게 없어

맥없다 脈없다
형용사 기운이 없다.


퇴근하고 밥 먹고 나서 맥없이 시간을 보낸 지 4시간이 넘었어. 이런저런 잡생각은 많지만 무슨 생각을 했냐고 하면 아무 생각이 안 나. 없는 기운을 끌어올려 간신히 필사를 했어.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저 멀리 던져두고.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은 흘러가지. 오늘 필사한 문장에서 자기 효능감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어.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 힘이라는데 그 힘이 부족한 것 같아. 언젠가 싹을 틔울 거라는 문장에도 힘을 얻지 못했거든. 내일이 되면 또다시 싹을 틔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하루를 보낼지도 모르지. 서평을 써야 할 책들이 밀리기 시작했어. 시집은 더 오래 걸리니까 자꾸 미루게 돼. 누가 숙제를 낸 것도 아닌데, 안 써도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자꾸만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괴롭게 해. 이런 내가 매일 글을 쓰고 있다니 낯설어. 그러면서도 기특하기도 한데 그 기특함은 글을 쓸 때면 사라지지. 글을 쓰는 게 즐거워야 하는데 자꾸만 쥐어짜 내는 기분이 들어. 매일 쓴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매일 쓰는 것으로 만족하기엔 형편없는 글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 이런 잡생각을 쓰고 있어서 더 그럴 거야. 그런데 그러면 뭐 어때. 이곳은 나의 공간이고 오늘은 이런 글밖에 쓸 수가 없는 걸. 100개의 글 다 마음에 들 수는 없잖아. 절망에 빠지지도 않았고 우울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아. 그냥 그렇다고. 조금 지쳤을 뿐이야. 오늘 비가 많이 내렸으니까. 무덤덤한 요즘. 조금 쓸쓸한 것 같지만 잔잔하게 그렇게 지내고 있어. 선잠이 아니라 푹 자고 싶어. 잔잔한 듯 하지만 여전히 요동치고 있나 봐. 오늘도 잠을 설치겠지. 밤의 마음은 언제쯤 잔잔해질까.



매거진의 이전글 58. 후루룩 국수를 먹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