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리 May 14. 2024

002.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와 마음에 바람이 들었다

바람 :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


바람이 분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좋은 날은 바람이 부는 날이다. 바람이 불면 초록의 나뭇잎이 흔들리고 평온하게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빠져든다. 앞에 바다가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바다는 멀리 있고 바람은 내 곁에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2주 가까이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12시부터 20분 정도 산책을 한다. 동네 골목길을 걷기도 하고 천변으로 내려가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을 보며 걷기도 한다. 조용한 시골마을에는 나무가 많아서 걷는 길에 만나는 커다란 나무 아래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흔들리는 나뭇잎을 오래 바라본다. 고개가 아파오면 그제야 다시 걷는다. 고요하고 평온한 잠깐의 시간.




바람 : 들뜬 마음이나 일어난 생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바람이 분다. 마음이 간질간질 당신 생각을 하면 시원한 바다가 생각이 났다. 추운 겨울바람이 무척 부는 바닷가에서 일몰을 바라보며 손이 시린 것을 핑계로 손을 잡던 그 바다를 떠올렸다. 마음에 바람이 불어와 차가운 바람에도 얼굴은 붉어지고 말았다. 바람 탓이라고 둘러댄다. 당신의 손이 나의 온기로 따뜻해지던 순간이었다. 애틋했던 시간은 금세 지나가고 당신은 이제 바람처럼 사라졌다.


바람 :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


바람이 분다. 마음은 언제나 날씨와 같아서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평온하게 하던 바람은 마음에 생채기가 나면 그렇게 쓰릴 수가 없다. 어디로든 떠나야 한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다. 바람이 세게 불어와 머리칼이 헝클어진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린다. 평온하기를 바라며 찾아간 바다에서도 성난 바람에 마음마저 어수선해졌다. 당신이 보고 싶다. 새파랗던 바다가 점점 회색빛으로 변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당신이 아니라 그때의 우리 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과 나 없이는 잘 지내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충돌한다. 이 못난 마음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싶다. 여전히 기억 속을 바람처럼 휘몰아치며 휘청대는 나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01. 단어채집을 시작하게 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