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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란 Oct 19. 2023

살고 싶은 삶이 이어지도록

누우면 잠든다는 M이 말했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자.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연애할 때는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주로 다툴 때. "넌 생각이 없어" 오래도록 내 곁에 있었던 이. 오래도록 나를 지켜보고 사랑했던 이의 말이니 의심 없이 믿어 왔다. 그래서 M의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반항심이 일었다. '아닌데? 나 생각 없는데?' (이제는 안다. 그건 '너는 네 생각밖에 없어'였음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까 잠을 못 자는 거야. 안 좋은 생각이 더 안 좋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그럼 생각이 그쪽으로 더 깊어져서 잠을 못 자게 되는 거야"

"아니야. 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런 생각이 아니야.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생각이지. 가령 이런 거야. 풍경 좋은 오솔길을 걷다가 다람쥐를 만났어. 그럼 갑자기 디즈니 캐릭터인 칩앤데일이 생각나. 그리고 영화의 인상적인 몇 장면이 떠오르지. 칩앤데일이 무언가 훔쳐 달아가는 장면이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치즈였나? 도토리였나? 치즈 하니까 그거 생각나네. 뭐 이런 식인 거지"

"애기네"

"애기라고?"

"어린애들이 그러잖아"


그리고 나는 밤을 꼴딱 새우고 병원에 갔다. 병원에 가는 여정 동안 내가 하는 생각의 경로를 따라가 보기로 하면서(물론 M은 눕자마자 잠들었다). 첫 생각은 역 안에서였다. 영주역은 내가 영주에 온 이래로 쉬지 않고 공사 중인데, 오늘은 무언가 뚫거나 자르는 모양이었다. 거대한 드릴이 벽을 울리는 소리가 대합실까지 들이닥쳐, 나는 스케일링 당하는 어금니가 된 기분이었다. '스케일링 당하는'이라고 생각한 즉시, '스케일링'과 '당하다'는 적합하지 않은 연결이라고 생각했다. 더 건강하고 나아지기 위한 일에 '당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할 수 있나? 부적합.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그렇다면 왜 나는 스케일링을 당한다고 생각했는가. 무언가 나아지기 위해 고통은 필수불가결의 과정이므로. 이어지는 생각. M이 말했었지. "책에서 읽었는데, 그런 건 '먼지 쌓는 거울을 닦는 일'이래. 생각해 봐. 먼지 쌓인 거울을 닦는 거 얼마나 힘들어? 먼지도 나고…" 나는 그때 생각했었다. '먼지 닦는 게 왜 힘들지? 난 한 번도 먼지 닦는 일이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찌든 때도 아니고 거울 정도야…' 하지만 잠자코 들었다. 나는 자책하고 후회하며 울고 있었고, M은 그런 나를 위로하는 중이었으므로. 나는 그런 M의 마음을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고 싶었으므로.


이후로도 생각했다. 책방에 대해, 편지에 대해, 할머니 집에서의 기억에 대해, 외할머니의 집에 대해, 칼림바 연주에 대해, 옆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할아버지에 대해, 노인에 대해, 관계에 대해, 위계에 대해, 사투리에 대해, 늙는 것에 대해, 시간에 대해, 아버지와 애틋함에 대해, 해가 든 길 위로 천천히 걷는 노인에 대해, 커다란 은색 헤드폰을 쓰고 교복을 입은 학생에 대해, 의무기록사본에 대해, 그걸 대합실에 두고 온 나에 대해, 세계실수선수권대회에 대해, 낡은 기차에 대해,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손톱에 대해, 건너편 아주머니들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에 대해….


M의 말이 맞았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고, 그래서 잠을 못 자는 거다. M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자라고 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미치겠다. 생각이 많아서 좋은 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영주역에서 안동역에 도착할 때까지 이미, 11월 구독 편지에 쓸 소재 12개는 얻었다.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는 거다. 순식간에 12개를 깔고 가니, 사실 이 소재들을 11월까지 묵혔다 쓸 일은 없다. 그날은 또 그날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므로. 그거 말고는 뭐가 좋을까. 편지가 아니어도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지.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된다. 어떤 생각 끝에는 아주 멋진 깨달음에 이르기도 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삶이 더 예쁜 쪽으로 바뀌기도 하니까. 그것 말고는 뭐가 있을까. 그거면 충분한 걸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진료실에 들어간 직후. 의사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대면한 직후.


수치는 일반인의 30배 정도로 추측. 콜레스테롤 수치도 너무 높다. 먹던 약의 용량을 열 배 늘려야 하고, 새로운 약도 추가되었다. 조직검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다음 주 예약을 잡는다. 조직검사를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미루어둔 일이었던 것만 같다. 내가 건강을 미루어 두었듯. 두려움이 밀려온다. 서러움이 밀려온다. 그리움이 밀려온다. 걱정이 밀려온다. 다시 서러움. 원망. 걱정…. 좋은 것들은 밀려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도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걱우걱 김밥을 먹는다. M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고, 나는 김밥을 볼 양쪽으로 밀어 넣은 후 수신 버튼을 누른다. 이런 건 단 한 번도 미루는 법이 없다. 그와 대화하며 희미하게 웃는데, 그 와중에도 여러 층의 불안이 안개처럼 내려앉는다. 그가 정말 나를 걱정하는 걸까. 그러니까, 정말로, 정말로 많이 걱정하는 걸까.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만큼의 시간이 없었다는 걸 인정하면서. 전화를 끊고 하리와 쿠키를 생각한다. 한정된 시간에 대해 생각하고, 유한한 우리의 존재를 인지하고, 하리 쿠키와 다시 함께 사는 삶을 생각한다.


좋은 생각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모든 게 '삶' 안에서 가능한 것이므로. 살아있는 나는 역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벤치에 앉는다. 오후 두 시 반의 햇살이 내려앉은 벤치는 따뜻하다. 너무 따뜻해서 뭉클하고 만다. 누군가 다가와 풍기 가는 버스가 오느냐고 묻는다. 진짜로 몰라서 모른다고 말한 후, 노선 안내판의 위치를 알려준다. 하지만 이내 더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 그가 집까지 무사히 돌아가도록. 최소한의 불안만 느낀 후 오래도록 편안하도록. "거기 두 자리 숫자 버스 없죠? 풍기 가는 버스는 아마 두 자리 수일 텐데, 거기 없으면 환승하셔야 할 거예요. 1번 버스를 타고 '상가시장 앞'에서 내린 후에 풍기 가는 버스로 환승하시면 돼요. 저도 그거 타니까 같이 타시면 될 것 같아요." 아주머니는 의지할 곳이 생겼다고 느꼈는지, 조금 서성이다 내 옆에 앉는다. 그녀의 엉덩이도 따뜻했을 것이다. 나의 다정이 그의 불안을 녹이고,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안심을 데워주었을 것이다. 살아있어 느끼는 작은 행복들을 더 세심히 느껴야겠다고 생각한다. 적게 생각하고 더 많이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카드단말기 설치 기사님을 만나고, 맡겨두었던 책방 도장을 찾고, 샤워를 했다. 조금 울고 엄마가 가져온 야채죽을 먹었다. 아무런 간도 되어 있지 않은, 몸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것 같은 고운 죽이었다. 일찍 자려고 누웠다가 퇴근하는 M과 영상통화를 했다. M이 웃으니 나도 어쩔 도리 없이 웃고 말았다. 통화를 마치고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갈등이 생겼다. 그것은 몸집이 아주 작은 아이였지만 치명적인 위험성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는 와중에 더 잘 알고 싶기 때문에. 걸려온 영상통화를 받지 않고 종료했다. 조금 더 울다가 전화를 걸었다. M이 웃으니 또 어쩔 도리 없이 웃고 말았다. 몸집이 작은 아이는 아주 작은 방울들을 만들며 터져서 사라졌다.


"30분이라는 시간이 얼마큼인지 체감이 잘 안돼서"

"지금은 됐고?"

"응"

"얼마큼인데?"

"찰나의 순간이겠지"


나는 그의 마지막 문장이 더없이 완벽하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그는 내가 좋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함께 본 영화는 30일. 다음에 함께 있을 시간은 30분. 안 돼. 그다음이 3분인 건. 그 다다음이 3초인 건! (절규) 60분만 같이 있자고 할까? 그럼 다음은 120, 240이 될지도 모르니까. 어찌 되었든 나는 오랜만에 밤에 잠들어(새벽이 아니라니) 새벽에 깨어났다(여전히 아침은 아니지만). 더 자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생각 세포가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젯밤에 떠 둔 물 한 컵을 마셨다. 또 한 잔 더 마셨다. 책방하리 예비 손님들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우주의 신에게 알리기 위해서.


내 몸을 스케일링하며 살아갈 거라고. 때로 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건 나아지는 과정일 거라고. 살고 싶은 이 삶이 이어지도록, 부지런히 걷고 부지런히 달리고 부지런히 사랑할 거라고. 당신이 줄곧 내 편이었다는 것을, 그 마음이 변치 않을 것임을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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