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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Apr 12. 2023

내가 뒷좌석에 앉아있을게.

과정 하나

운전면허를 처음 딴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험이 쉬울 때였는지 금방 취득했지만 실제로 차를 가지고 다닐 일이 없다 보니 10년 이상 장롱면허로 지내온 참이었지요. 결혼하면서 다시 연수를 받아 더듬더듬 동네 운전을 하고 다니게 되었고, 처음 도전한 장거리 시내운전(이라고 해도 서대문 신혼집에서 친정인 잠실까지 막혀도 50여분)은 아빠가 동승해 주기로 하셨습니다.


단지 앞, 주차장 입구에서 아빠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요. 함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빼며, 단지를 나오며, 복잡하기 짝이 없는 서울역 앞을 지나 한남대교와 올림픽대로를 타고 오는 동안 아빠는 코너를 좁게 돌면 안된다, 팔이 몸통에서 너무 떨어지면 핸들이 흔들린다, 차선 바꿀 때 속도 줄이지 마라 등등, 평생 무사고로 운전해 온 이력을 여지없이 뽐내며 팁을 전수해 주셨습니다. 덜덜 떨며 집 앞에 주차까지 마무리하자 씩 웃으며 잘하네, 하던 얼굴이 지금도 생각나요.


이상하게 아빠가 단지 앞에 서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통스러운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일어난 섬망증상에 오락가락 하던 와중에 아빠는 누구에게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운 혼잣말을 하곤 했습니다. 가끔은 취한 사람 같았고, 졸린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었는데요. 한번은 웅얼대는 소리로 그런 말씀을 했었습니다.


내가 건강해질 수 있으면 자식들이랑 근처에 살면서 늘 연락하고 너희를 자주 보며 지낼거야.

너희가 아이를 낳으면 수시로 사진도 달라고 하고,

너희랑 놀러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내가 항상 곁에 있을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어디든 내가 뒷좌석에 앉아있을게.


뜬금없이 뒷좌석에 있을 거라는 말은 왜 하셨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자녀들과 오가려면 차를 타고 오가는 생각을 하시다가 그랬던 걸까요? 제가 이제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걸 떠올리셨던 걸까요?


장례를 마치고 당분간 엄마와 함께 지내기 위해 짐을 챙겨 차에 올랐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지나온 길이었지요. 그리고 아빠가 했던 말들이 생각나고 말았습니다.


아빠, 보고 있어요? 저 이제 운전 잘해요.


아빠는 운전중에 핸들에서 손을 떼면 안 된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집에 가는 내내 눈물을 닦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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