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R Apr 14. 2023

사망진단서를 들고

과정 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돌아가신 분이 생기면 가족들이 할 일은 끝이 없습니다.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다음부터 생활 전반에 걸친 많은 작업이 남게 되죠.


그중 첫 단추를 꿰는 일이 사망신고를 하는 일입니다. 구청에 가서 사망신고를 해야 그다음부터 상속에 대한 절차를 시작할 수 있거든요. 고인의 모든 재무적 연결고리 - 자동이체라든가 카드 납부액처럼 사소한 것부터 세금이나 연금, 부동산처럼 굵직한 것까지 - 정리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게 됩니다.


요즘엔 인터넷에 워낙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고 안심상속 서비스라는 것도 있어서, 장례 자체를 준비했던 것보다는 우왕좌왕하지 않고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시간에 쫒기지도 않고 상속에 관한 법적 상담도 손쉽게 카톡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사망진단서에는 직접적인 사망 원인과, 직접원인을 제공한 3가지 사유를 순서대로 적게 되어 있습니다. 의료적인 표현으로 축약된 네 줄의 사유를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뭐 이런, 망할 것들이 사람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들었는가 싶어 화가 났습니다. 이게 사망의 원인인 건 알겠는데, 대체 왜 이 원인들이 줄줄이 생겨났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우리 아빠에게? 왜 이렇게 빨리?


게다가 사망신고를 하면 고인의 주민등록증을 회수해 갑니다. 저는 이때가 납골당에 아빠를 모시고 돌아오는 길보다 더 허전했던 것 같아요. 일단 그렇게 가져가버릴 줄 미처 몰랐고요, 어쩐지 사회에서 흔적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뭔가 표시라도 해서 다시 돌려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털레털레 돌아 나오는데 민원처리를 하러 온 한 백발의 노인에게 직원이 안내를 해 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딱 봐도 노인은 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두 번 세 번 되묻는 중이었고, 직원은 단어 맞추기 게임이라도 하듯 한 음절 한 음절을 끊어가며 큰 소리로 되풀이해 뭔가를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왜 우리 아빠는 저렇게 늙어 보지도 못했을까? 백발이 되도록, 가는귀가 먹도록, 지팡이를 짚도록,  검버섯이 피도록 늙어서, 중년이 된 내가 그 팔을 부축하고 걸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종알대며 매달리는 외손주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며 이 여름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이 슬퍼서 부랴부랴 집에 돌아왔지만 한동안 지나가는 할아버지만 봐도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정말 못 돼먹은 생각입니다만, 나이든 노숙인을 보고도 비슷한 생각이 들곤 했어요. 저렇게 스스로를 잘 돌보지 못하는 사람도 저 나이까지 살아있는데 왜?


아무 소용없는 생각일 뿐 아니라 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는 걸 생각하면 어리석고 의미 없는 생각입니다. 알고 있어요.


사람을 잃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유치하고 서러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뒷좌석에 앉아있을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