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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Apr 14. 2023

당신의 여권

과정 셋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최대한 많은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고, 쓰던 방을 그대로 두며 매일같이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최대한 고인을 떠올리게 할 만한 물건들을 싹 숨기고 비워 슬픔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죠.


우리 가족은 후자였습니다.


엄마는 장례가 끝난 후 일주일 내내 집을 정리했습니다. 옷장을 비우고, 쌓인 약을 버리고, 오래된 물건들을 하나하나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앨범은 깨끗이 닦아 보이지도 않는 수납장 한구석에 몰아넣었죠. 저도 비슷했습니다.


아빠가 나온 결혼식 영상은 그 후로 한 번도 보지 않았고, 아빠와의 대화가 남아있는 카톡방은 대화 목록 맨 아래로 내려간 지 한참이 되었지만 나오지 못한 채 그대로 있어요. 그래서 카톡 대화목록을 스크롤할 때 조심조심 내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생각없이 휙휙 아래로 내리다 보면 이제 (알 수 없음) 으로 대화명이 바뀌어 버린,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계정명을 보게 되고 마니까요. 그 대화방에 도로 들어가 볼 자신은 더더욱 없으니까요.


어머니의 유품, 아버지의 유품, 이런 말을 많이 듣지만 저는 그래서 아빠 물건이라 할 만한 게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챙겨 올 자신이 없었죠. 너무 지쳐서 더 이상 슬퍼할 힘도 없었고 물건을 보면 죽음이 상기될 뿐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챙긴 것은 딱 하나, 아빠의 여권이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세 번 떠났습니다. 엄마와는 훨씬 더 여러 번이었습니다만 두 분을 다 모시고 다녀온 것은 세 번이었어요. 하와이, 오사카 그리고 발리 순이었는데요. 세 번 모두 다 날씨와 음식과 숙소가 잘 맞아떨어져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와이키키 해변을 거닐고 거북이를 보러 투어도 가고요. 교토의 료칸에서 온천욕을 하며 꽃놀이도 다니고, 발리에서는 원숭이가 날뛰는 절벽에서 선글라스를 도둑맞을 뻔하고 혼비백산했던 기억도 있죠. 딸 덕에 좋은 곳은 다 다닌다며 뿌듯해하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더 좋게만 남은 것 같아요.


여권을 그래서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기억하시죠? 돌아가시던 날. 좋았던 이야기, 여행 얘기를 해드렸을 때 울었잖아요. 저랑 아빠 둘 다요. 엄마 집에서 돌아오던 날, 아빠의 여권 하나만 달랑달랑 챙겨 와 제 여권과 나란히 두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아빠가 떠난 지 삼 년째 되는 해입니다. 삼년상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듯 어쩌면, 차마 마주 볼 수 없는 커다란 상실도 조금씩은 추억이 되는 부분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그 앨범들을 꺼내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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