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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Apr 14. 2023

그리움만 쌓이네

과정 넷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실제로는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노래였습니다. 원곡인 줄 알았던 버전은 아마 95년도의,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인 노영심 님 버전이었던가 봅니다. 사실 특별히 찾아 듣거나 하는 노래는 아닙니다만, 가족을 잃고 나니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호상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뜻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에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호상(好喪)이라 함은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상사(喪事)라는 말입니다. 좋은 뜻이라서 샘이 났던 것도 같습니다. 괜찮은 죽음, 복된 죽음이란 것도 있나? 사람이 죽는다는 게 얼마나 큰일인데.


제가 이렇게 삐딱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아빠가 다신 퇴원할 수 없는 입원을 하던 때, 매일을 무슨 연락이 올 지 걱정하며 한시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던 때, 내일부터 당장 아빠를 못 만난다고 상상하며 마음을 단련시키려고 노력하던 그때부터였습니다. 그땐 마음이 사발팔방으로 튀어 다녔습니다.

사람은 왜 태어나는 걸까요? 그냥 태어나 있는 사람들끼리 이별하지 않고 영원히 살면 안 되는 걸까요?


뉴스에 나오는 죽음은 산발적이고 간접적입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수백 명이 죽는 사고가 벌어져도 내게 당장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죠. 그래서 죽음은 늘 곁에 있지만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는다는 건 일생을 뒤흔드는 일입니다.


죽음은 절대로 돌이킬 수 없고 비슷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목소리들을 수도 목소리에 대답할 수도 없습니다. 영상이나 오디오로 기억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일방적이죠. 하지 못한 질문은 영원히 답을 얻을 수가 없고 미처 하지 못한 말도 절대로 전달할 수 없습니다.


머리로 생각해서 아는 것과, 실제로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그것도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갈증과도 같다고요. 시간이 지난다고 치유되거나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계속, 쌓이는 고통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아마 그리움이 쌓인다는 노랫말을 지었나 봅니다. 적확한 표현이거든요. 정말 딱 맞는 말이요. 떠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어디로 흐르지도 희석되지도 않습니다. 막말로 맞은 데 또 맞는다고 덜 아프지 않듯이 어떤 종류의 슬픔은 시간으로 잘 희석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지 삼 년째인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전하지 못한 말이 아쉽고 보이지 못한 삶이 아깝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날도 오기는 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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