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투루게네프 / 문학동네
나는 뒤떨어져 있고 그 애는 앞으로 달아나버렸어요.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요. (p74)
이 소설은 제목이 보여주듯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을 중심축으로 펼쳐놓은 이야기이다. 젊은 세대 앞에 자신감이 떨어진 구세대의 모습, 자녀와의 불통에 고민하는 부모 세대의 고뇌, 새로운 시대의 문화에 적응할 수 없는 기성세대의 혼란 등과 대비하여 기존의 정서와 제도와 관습에 반기를 들고 낯선 사고로 세상을 보려는 신세대의 등장을 보여준다.
갈등
나는 누구의 견해에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p110)
"일체의 권위를 물리쳐라!" 기존의 제도와 관습을 부정하고 새로운 사고로 세상을 보는 신세대의 등장으로 세상은 변화하고 진보한다. 신세대의 모든 '부정'은 '힘'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끌어당긴다.
세대 간의 갈등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인물은 바자로프와 파벨이다.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의사 자격시험을보려고 하는 바자로프는 구세대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인물이다. 한창 때 사교계의 왕자였던 구식 낭만주의자 파벨은 신세대의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 둘의 날카로운 대립은 결국 결투로까지 이어진다.
인물들
그들에겐 우리에게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고 우리에 비해 어떤 우월성을 갖고 있는 것 같아. (p90)
아르카디와 바자로프는 친구 사이다. 아르카디는 대학교가 있던 페테르부르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올 때 바자로프와 동행한다. 집에는 아버지 니콜라이와 큰아버지 파벨이 있다. 니콜라이는 신세대의 거친 물결을 두려움으로 바라보지만 그들의 힘과 구세대의 퇴보를 인정한다. 파벨은 기존의 것에 가치를 두고 새로운 것들을 멸시한다.
바자로프의 아버지 바실리 이바니치와 어머니 아리나 블라시예브나는 아들에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 아들에게 집중하지만, 아들은 부모의 마음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
사랑
"아아, 나는 그 공허한 존재를 왜 이다지도 사랑하고 있는 걸까!"(p249)
파벨은 과거 R공작부인과의 치명적인 사랑으로 삶 자체가 뒤틀려버렸고, 나이든 현재까지도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자유롭게 생각하는 여성들은 덜 떨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하던 바자로프는 남자를 '칠칠치 못하고 답답하고 무기력하고 성가신 존재'로 여기던 ('현명하고 부자고 과부인')오딘초바와 서로 상대에게 호기심을 느끼며 빠져든다. 그러나 바자로프는 자신의 자존심을 온전히 버릴 수 없었고, 오딘초바는 자신의 평온한 일상이 더 소중했다. 바자로프와 오딘초바는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로, 서로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했고 그 감정을 위해 자신을 낮추지도 않았다.
파벨과 바자로프의 사랑을 통해 두 세대의 서로 다른 사랑법을 엿볼 수 있다.
결별
아르카디는 '과거의 스승이자 친구'인 바자로프와 결별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바자로프와 아르카디는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인데. 아르카디의 일방적인 우호적 감정으로 이어진 관계로 보인다. 그들은 근본적인 견해 차이와 길지 않은 교류 기간 등으로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여 서로의 생각을 용납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아르카디는 오딘초바의 동생인 카챠와의 결혼으로 현실적인 안정을 찾는다.
죽음
바자로프는 발진티푸스 환자를 해부하다 감염되어 죽는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야망이 컸던 그는, 시대를 뛰어넘지 못한 채 죽음으로 주저앉게 된다. 기존의 것들에 순응하지 않는 '거인' 바자로프의 정신세계가 나이가 들며 어떤 형태로 확장되어 갈지 궁금했는데 허무하게 죽음에 이르는 모습에 허탈함이 느껴진다. 부모 세대(구세대)의 모든 것을 부정했던 바자로프는 살아남지 못했고, 타협의 여지를 보여주던 아르카디는 만족스런 삶을 사는 모습에서 작가의 지향점을 짐작하게 된다. 죽음에 직면하여 바자로프는 오딘초바를 찾지만, 오딘초바는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 한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삶이 일그러진 파벨의 이야기도 그렇고 오딘초바의 냉정함도 그렇고, 작가가 변덕스런 여인에게 몹시 상처받은 과거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해 보게 된다.
*구세대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거인'으로 새 시대의 과업에 나서고 싶었던 바자로프의 꿈은 허무하게 꺾였다. 작가가 '가혹한 검열이 판을 치는 러시아 풍토'에 환멸을 느껴 유럽으로 건너가 여생을 보낸만큼 '사상'의 꼿꼿함보다는 '화해'와 '생명'에 더 무게를 두고 싶었던 것일지 모르겠다. 바자로프의 부모를 통해 헌신적 사랑을 드러낸 문장들은 어떤 '사상'이나 '주의'도 뛰어넘을 수 없는 참사랑의 원형을 제시한 듯하다. 자신의 것을 지키려 사랑을 위해 무엇도 버리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대비되어 더욱 헌신적으로,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서글프게 묘사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직관적 제목처럼 한 세대와 다음 세대의 만남과 부딪침, 꺾임과 수용, 좌절과 포용에 대한 세밀화같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