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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록 Sep 14. 2024

도착한 너의 세계(4)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 4(109~134쪽)

(제2편) 종의 기원담

- 그 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


"차가운 석회가루만 날리는 도시는 널브러진 채 속삭인다. 너희도 언젠가 우리처럼 한 조각의 철과 돌멩이가 되어 사라진다. 존재했다는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p116)


'살만 남은 바퀴, 끊어진 철골, 껍데기만 남은 엔진, 뜯긴 문고리, 타이어와 그 바퀴 자국 석고본, 플라스틱병, 유리조각, 얼어붙은 비닐 뭉치, 'MONA'라는 문양이 있는 부러진 볼펜'(p115)


퇴락한 것들, 뒤틀린 것들, 생의 무게가 빠져나가 옅은 흔적으로만 남은 것들 앞에서 로봇은 신을 생각한다. 신이 지은 존재에 깃든 영혼을 생각한다. 신의 응시점과 피조물의 안녕을 묻는다. 신에게 던진 질문이 로봇의 삶으로 돌아오길 기다린다.


바람은 강하고, 방향이 자주 바뀐다.

기류가 불안정하고, 석회가루는 자욱하게 날린다.

존재하던 것들의 일상이 무너져 묻힌 자리가 을씨년스럽다.

엎어지고, 벗겨지고, 너덜너덜해지고, 휑하니 뚫리고, 고스란히 드러난...

로봇 진화의 역사가 묻힌 죽은 건물을 배경으로

주인공 케이가 서 있다.

유기생물학을 그만둔 지 30년.

케이는 고생물학자로 오지의 작업장에서 화석을 발굴한다.  

가장 섬세한 기종의 로봇 손으로 과거에 함몰된 일상을 꺼낸다.

일상이 놓였던 시간을 캐낸다.


때때로 로봇은 생각할 것이다.  

'우리의 생은 신이 프로그램하셨는가.' (p111)

스스로도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떠나오고,

그리고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삶 앞에서.


연구소를 떠나는 이유를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던 케이.

그가 다시 연구소로 향한다.

로봇의 생은 신이 프로그램하셨는가.

아니면 로봇의 자유의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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