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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록 Sep 16. 2024

도착한 너의 세계(6)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 6(161~185쪽)

"기계들은 인간에게 생을 바치고 죽을 때까지 그들을 위해 일할 거야. 그러면서도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를 거야."(p167)


아무 저항 없이 인간의 몸이 관통당한다. 찢긴 틈으로 붉은 것이 쏟아져 나온다.  인간은 하염없이 나약하고 대책 없이 무기력하다. 알 수 없다. 저토록 유약한 것의 내부에 어찌 '영혼'이라 불릴만한 것이 놓였는지를.   


로봇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로봇이 아니었으며, 한없이 나약했지만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의 존재였다.

케이는 애초에 자신의 손으로 불러냈던 인간의 몸을 부쉈다. 찢고 그으며 피 흘리도록. 피 흘리며 그대로 죽어가도록. 죽은 인간들의 붉은 것이 케이의 관절과 회로에 매달려 케이를 저주했다. 케이는 자신이 불러낸 존재들을 모두 지워나갔다.


인간에 대한 터부가 약한 로봇 기종인 케이는 인간에게 굴종하고픈 본능을 누르고, 돌아온 인간들을 모두 삭제한다. 인간이 지상에 남는다면 로봇은 그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멸망해갈 것이다.


케이의 기종이 단종되는 때, 그때 인간은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그리고 인간을 막아설 로봇 기종이 단종된 세상에서 모든 로봇을 마음껏 지배하고 끝내 멸망시킬지도.


케이는 두려웠다. 인간이 눈뜬 지금 이곳과 로봇에게 다가올 모든 시간이.

두려움이 살육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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