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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록 Sep 20. 2024

경성_ 천재들은 어디로 갔을까.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

"축음기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 '룸펜' 지식인들은 바이올리니스트 미샤 엘먼의 연주에 대해서, 지금 막 명동에서 개봉된 르네 클레르의 영화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다." (p20)


* 유홍준 교수가 '우리 근대문화사의 소중한 증언록'으로 추천한 미술사가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은 불우한 시대에 경성을 살아냈던 천재들의 삶을 보여준다. 엄혹한 식민지의 현실에서도 예술은 태어나고 자랐으며, 그를 지키려 발버둥 친 예술인들의 지난한 삶이 있었다.


<경성의 시인과 화가와 소설가>

'시인'은 '화가'의 그림 속에서 파이프 담배를 물고 비스듬히 생각에 잠겨있다. 덥수룩한 머리와 숱한 수염이 뻗친 창백한 얼굴. 쏘는 듯 날카로운 눈빛이 형형하다.

그는 구인회 회보인 『시와 소설』 창간호에 현대인의 절망에 대한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p23)

미술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던 그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삽화를 그렸다. 그의 삽화는 입체주의, 다다, 초현실주의를 넘나든다.

그는 다방 제비를 운영했다.

1933년 각혈이 시작됐다.


'화가'는 어머니가 없었다. 그를 세상에 내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그는 세 살 무렵 발현된 척추장애를 평생 안고 살았다.  

그는 니혼대학, 다이헤이요미술학교에서 미술이론과 실기를 공부했다.  《이과전》《독립전》등 당대 일본 재야 그룹전에서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소설가'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썼다. '시인'을 제비 다방에서 처음 만나 절친이 되었다. 그는 '시인'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신문에 연재하는 자신의 소설에  '시인'의 삽화를 넣었다.



 '시인' 이상은 1936년 도쿄에서 불령선인(일본제국주의자들이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 사람을 이르던 말)으로 구치소 생활을 한 후, 27세에 숨을 거둔다.

 '화가' 구본웅은 6·25전쟁 중 1953년 영양실조와 폐렴으로 눈을 감는다.

'소설가' 박태원은 월북을 했다.


시대는 천재들을 소모했다.


경성에는 다방 제비가 있었고, 제비는 목마른 지식인들의 작은 우물이었다. 그러나 제비는 오래 날 수 없었고, '마담(금홍이)도 사라지고 축음기도 팔아먹고' 파산했다.

천재들은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들은 사라지고 그들의 이름이 남았다.



구본웅의 외손녀는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었다. 현재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 강수진이다.

박태원의 외손자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다.


천재의 피는 이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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