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의 『폴링 인 폴』
"표현되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의 부스러기들이 언제나 내 안을 둥둥, 떠다녔다."(p188)
『폴링 인 폴』 중 <거짓말 연습> , 백수린 , 문학동네
소통은 어렵다.
내 발음 기관을 통과한 언어가 상대에게 도착하기까지, 도착한 언어가 의미화되어 상대의 마음으로 침입하기까지 그 과정 중 많은 것들이 소실된다. 소실되는 것이 때로는 소리 하나, 때로는 의미 하나, 때로는 마음 전부일 때도 있다.
그녀는 낯선 도시에 있다.
어학연수를 위해 프랑스에 온 지 여러 달째지만 낯선 도시에서 화자는 불통에 시달린다. 도시 곳곳은 파업으로 멈춰있고 진학할 대학의 합격서류는 도착하지 않은 채, 이국땅에서의 불안정성과 불확신성은 고조된다. 회화 연습을 위해 학원에서 주선한 르블랑 부인과의 대화는 진전이 없다. 가는귀를 먹은 르블랑 부인의 외로움과 화자의 서툰 회화 실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가족이 따뜻함이 아니고 상처일 때 그 고통은 타인과의 불통보다 더 아프다.
사회적 불통과 더불어 그녀는 가족과도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먼 자리에 놓여있다. 그녀의 엄마는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생동감 있는 거짓말을 소통의 도구로 삼는다. 화자는 거짓말을 일삼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고, 둘 사이에 솔직함이 존재한 순간은 없었다고 기억한다. 별거 중인 남편은 결혼하면 언제나 서로에게 솔직하자는 말로 청혼했지만 결혼 후 삼 년 만에 불륜 사실을 밝힘으로써 화자에게 상처를 입힌다.
이국의 낯선 문화적 환경과 서툰 언어 속에서 불통을 겪으며 화자는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고 유창함이라 느낀다. 그래서 자신의 안에 표현되지 않은 이야기의 부스러기들이 떠다니고 발아되지 못한 말의 씨앗들이 내면에 번져가도 그녀는 고요히 문을 잠근다. 엄마와의 소통도, 르블랑 부인과의 소통도 포기한다.
『폴링 인 폴』은 백수린 작가의 첫 소설집이고, 그중 <거짓말 연습>은 그녀의 등단작이다. 처음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거짓말 연습>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여전히 활발하게 글을 쓰는 작가를 보는 일이 즐겁다. 단아한 문장과 안정감 있는 서사와 섬세한 감성을 보여주는 그녀의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녀가 작품집을 낼 때마다 책을 사보게 되는 이유다.
이 작품에서도 그녀의 성향은 드러난다.
어느 새벽, 도시의 한 성당을 찾게 된 그녀는 대리석 천장을 공명 시키며 퍼지는 노래의 화음을 들으며 소통의 욕구를 찾게 된다.
"전혀 들어본 적 없는 그 곡조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천천히 가로지르며 흘러갔다. 물줄기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화음. 그 장엄하고 우아한 화음을 듣다 보니 이 도시에 온 이후 처음으로, 르블랑 부인을 찾아가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p193)
그리고 기숙사의 다양한 출신의 학생들과 학기의 마지막 식사를 함께 하며 그녀는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유창함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 우리 중 누구도 상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백 퍼센트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의 말이 온전히 전달된다고 착각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이곳에 진실한 것이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행위,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p195)
존재는 또 다른 존재와의 소통을 원한다. 겹겹의 불통으로 굳어있던 화자의 마음이 존재의 숙명에 이끌려 소통의 시도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담백한 문장으로 매끄럽게 독자를 인도한다. 설득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이 작품의 첫 문장은 언제 읽어도 가슴이 뛴다. 작가의 유려한 언설에 기대 또 한 번 하염없이 이끌려 가고 싶은 욕구가 인다. '창밖은 완연한 여름이었다'라는, 끝에서 세 번째 문장으로 작품이 끝났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주 사소한 개인적 아쉬움이 있지만, '고요하게 울리는 그 합창곡에 끼어들기 위해서 나는 굳게 닫고 있던 입술을 살짝 떼었다'라는 마지막 문장 앞에 서면, 나 또한 오늘 하루치의 소통의 행위를 준비하는 마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