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의 삶과 어긋나는 존재들

손보미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중 <임시교사>

by 장소록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반복되었던 잘못된 선택, 착각, 부질없는 기대, 굴복이나 패배 따위에 대해 생각했다. 언제나 그런 식이지. 그녀는 항상 그게 용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녀는 그게 용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곤 했다."(p116)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중 <임시교사> , 손보미, 문학과지성사



드문드문 박힌 볼드체 문장, 우리의 일상 언어와는 간격이 느껴지는 대화들,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건네지는 데운 우유, 'P부인'이라는 명칭. 손보미라는 작가의 이름이 없었다면 이건 그대로 레이먼드 카버의 또 다른 작품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에서 삼십 센티미터쯤 떠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는데, 한국인의 삶에서 그만큼 떠 있는 작품이라는 평이 오히려 더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올해 제25회 이효석문학상 수상까지, 등단 이후 그녀의 다양한 수상 경력을 보면 이 시대 젊은 한국작가 중 가장 관심을 집중시키는 작가 중 한 명임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단편집 『그들에게 린디합을』이 2013년에 나왔을 때, 그 작품집에 수록된 아홉 편의 단편 중 6편이 2011년에 쓰인 것들이었다. 2011년 신춘문예 당선 작품인 '담요'가 강렬하게 이목을 집중시킨 탓에 그 해에 수많은 매체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은 결과일 것이다.


'공들여 만든 놀이터', '잘 손질된 잔디가 깔린 공터'가 있는,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 한강이 보이는 젊은 부부의 아파트. 그 집엔 '잘 생기고 예의 바른 젊은 아버지와 아름답고 우아한 젊은 엄마와 귀엽고 똑똑해 보이는 아이'가 살고 있다. 이 집에 보모로 들어온 이는 '천성적으로 남을 비난할 줄 모르는 사람', '지하철에서 누군가 메모지를 돌리며 적선을 부탁하면 절대로 거절하는 법이 없는 여자'이다. 이런 인물이 '박여사'가 아닌 'P부인'이라는 이니셜을 달고 주인공으로 등장함으로써 이 이야기의 비현실성과 비일상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P부인이 가진 것 중 가장 비싸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거대한 마호가니 책상이다. 젊은 부부의 아파트는 초라한 P부인의 집과 비교된다. 그러나 그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세상의 이치를 말한다. 그녀에겐 아름다운 마호가니 책상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력 면에서는 젊은 부부에게 형편없이 뒤지지만 문화적 자부심만은 뒤지지 않는 것이다. 원래는 식탁이었으나 책상으로 용도를 변경했다는 가구의 이력도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P부인은 젊은 부부의 아이를 돌보게 되고, 아이의 양육에 필요한 지식을 공부하며 '견딜 수 없는 행복'을 느끼지만 곧 그 생각 자체가 아주 불경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과 한가족, 혹은 진정한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그녀의 내부를 채우지만 그것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 엄마는 "남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반복하지만 P부인이 가족의 일원처럼 굴자 바로 해고해 버린다. "남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젊은 부부에게 P부인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만 유효한 한시적인 말이었다. 마치 '임시교사'가 정규교사의 복귀로 쓸모를 다하면 내쫓기는 것처럼, 젊은 부부가 순탄한 일상을 회복하자 P부인은 바로 불필요한 인물이 되어 내쫓김 당한다. P부인이 자신에 대해 '임시교사'였던 사람으로 알아주길 바랐던 것은 스스로는 '교사'에 대한 자부심에 방점을 찍은 것이었지만, 세상은 교사보다는 '임시'라는 낱말이 포함하는 한시성과 제한성에 집중한다는 사실을 그녀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소개하는 말에 '임시'라는 낱말을 떼는 것은 어쩐지 올바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이 앞에서 싸우는 건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P부인의 말에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거라며 아이의 부모는 그녀의 충고를 무시한다. P부인이 자부심을 갖는 문화적 소양과 품위가 젊은 부부의 눈에는 결락에 의한 무지로 폄하되고, 그녀는 결국 '생각해 보면 참 불쌍한 여자'로 동정의 대상이 되고 만다.


P부인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런 기도가 필요 없는 삶을 갈망한다. 그러나 P부인의 내부에서 솟구치는 남을 위한 헌신의 욕구는 번번이 보답받지 못한 채 종결되며, 결국 어리석은 결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부모에게도, 남동생에게도, 그리고 남들에게도. 그럼에도 그녀는 잘못된 일들이 언젠가 한순간에 해결될 것이라 믿고, 엉킨 끈이 풀어지듯 고쳐질 거라 생각한다. 사는 건 그런 거라고.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본인의 삶이, 타인에게는 그저 생활의 일부를 잠시 보조해 주는 '임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녀는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잠들기 위해 눈을 감는 건, 생각보다는 언제나 쉬운 일이었다."(p117)


<임시교사>의 마지막 문장, 잠들기 위해 쉽게 눈 감는 P부인의 태도는 세상에 대한 긍정의 몸짓일까, 넘을 수 없는 타인의 벽에 대한 체념일까.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세속의 변화 양상을 어떠한 자기모멸이나 원한 감정 없이 수용'하려는 P부인의 태도에서 '새로운 윤리의 계기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손쉽게 세상을 수긍하는 보수의 세계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 작품을 평하기도 했다.


작가 손보미는 <임시교사>에서 '멍청할 정도로 착한 여자', '몰락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자'에 관한 것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어리석다고 말해질 만한 누군가의 삶 속에도 숭고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렇다면 P부인의 삶은 숭고한가. 선의에 선의로서 답하지 않고 배려에 배려로 응하지 않는 세상에서 무모한 헌신과 일방적 정념은 과연 숭고해질 수 있는가. 그렇다고, 혹은 그렇지 않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다만 독자는 초라한 방에서 쉽게 눈감는 P부인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단절된 세상의 차가움을 대리 감지할 뿐이다.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임시'라는 이름표를 단 세상의 많은 이들을 떠올리게 된다는 점에서, 이 글은 어쩌면 그들에 대한 일종의 헌사가 될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난 후 깨닫는 한 가지. 이것은 일상에서 삼십 센티미터쯤 떠있는 작품이 아니라 그냥, 지금, 여기의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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