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기만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by 장소록
"어딘가에 있는, 물살이 정말이지 빠른 강이 줄곧 떠올라. 그 물속에서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서로 부둥켜안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어. 물살이 너무 강하거든. 그들은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거야. …" (p.386)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 민음사


소년 소녀, 죽음을 향해 자라다

헤일셤 기숙학교의 일상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는 소년, 소녀를 만난다. 화자인 캐시를 비롯하여 토미와 루스의 성장기가 담긴 이야기의 전반부는 여느 아이들의 성장 스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 사이의 소소한 갈등, 또래에게 놀림받고 외면당하는 아이, 교사에게 관심 갖고 영향받는 일상 등.


서른한 살의 캐시는 그 시절을 돌아보며 말한다.

'토미와 루스와 나 같은 이들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이 말은 그들이 보통의 소년, 소녀가 아닌 특수한 존재라는 점, 그들 이외의 클론들이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온 말이다.


헤일셤 안에서만 성장하던 그들은 자신들이 교사나 외부인들과는 다르다는 것,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섬뜩하게 여긴다는 걸 더 자라며 깨닫게 된다. 인간의 질병 치료를 위한 장기 기증자로 태어나 기증을 마치고 죽게 되는 존재. 그들은 헤일셤을 나온 후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되고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여 역할을 마치고 죽어간다.


어두운 유리에 비친 우리의 모습

이 이야기는 1990년대 후반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미 지나간 우리의 시간 속에 혹 클론들이 어느 외딴 공간에 존재했을지 모른다는, 혹은 지금도 어느 실험실 한편 외부와의 격리 공간 안에 클론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인간을 위해 죽어야 하는, 인간을 닮은 존재들. 그것이 과연 클론만의 운명일까. 비인간화가 가속화되는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특정 클론만의 운명은 아닌듯하여 씁쓸하다.


올리버 색스는 <의식의 강>에서 인간의 시각 구조와 유사한(망막, 각막까지 갖춘) '상자 해파리', 감정을 느끼고 학습이 가능한 '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그 책을 읽은 후에는 문어숙회를 먹는 일이 힘들게 된다.) 인간은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을 모두 인간 생존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거만한 의식으로, 다른 생명체에 대한 존중없이 잔인한 행위를 일삼는다. 『나를 보내지 마』는 소년 소녀의 성장소설로 시작해 지극히 인간적인 클론에게 감정이입하게 된 독자들을 당황시키며 잔인한 인간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이 책의 역자인 김남주는 이 소설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직면할 용기가 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보는 눈

토미는 분노 조절이 안 되어 종종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아이였다. 3년의 기증 유예기간을 얻기 위해 마담과 에밀리 교장과의 만남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또다시 분노를 폭발시킨 토미에 대해 캐시는 말한다. 그가 그렇게 돌아 버리곤 했던 건 어쩌면 일정 수준까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부정의한 사실을 직시할 때 우리는 불편하다. 그러나 감춰진 진실 위에 평온을 가장하며 서 있는 것도 행복은 아닐 것이다. 사실을 알고자 했던 캐시가 나중까지 살아남고, 현실 직시보다는 스스로 지어낸 스토리에 집중하던 루스가 일찍 죽은 건 어쩌면 은폐된 진실이 치명적이라는 은유는 아닐는지.


이 책에는 다양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아이들에게 사실에 가까운 예상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가 주어져야 한다고 여겼던 루시 선생님, 그들이 예정된 운명을 알았다면 그들은 유년을 빼앗겼을 것이며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박했을 것이라던 에밀리 교장과의 시각차.

그리고 기증자인 루스와 토미, 간병사인 캐시와의 입장 차이.

'네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너는 아직 간병사일 뿐 기증자가 아니잖아.' (p311)

(*이 아이들은 자라서 일반인들을 위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기증자가 된다. 기증자가 되기 전 일정 기간 동안은 기증자를 돌보는 간병인 역할을 한다.)


이런 다양한 간극을 통해 작가는 온전히 상대를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낸다. 한계를 지닌 인간이 이룩한 문명과, 문명의 이름으로 확산되는 비인간화에 대한 비판이 읽히는 부분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클론과 냉정한 인간의 대비 또한 '인간의 삶의 방식에 주목하고 싶었다'고 강조한 작가가 SF적 설정을 차용한 이유가 짐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거칠고 잔인한 세상'이다. 예정된 운명 앞에 속수무책인 클론들에게 세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 없는 인간에게도 세상은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이 글은 클론의 가면을 쓴 약한 인간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심사를 괴롭히는 슬픈 넋두리다.


'이건 수치스러운 일이야.' (p387)

오늘을 사는 우리 누구도 토미의 이 말에 쉽게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독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