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경애의 마음』
"다 어디로 간 거야, 하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왜 구해주지 않은 거야, 하는 질문을. 경애는 자기가 망가졌다고 느꼈고 어쩌면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피조물처럼 사람들이 기피하는 무언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P.70)
『경애의 마음』, 김금희 , 창비
십 대 시절 경애의 별명은 피조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들어낸 생명체를 지칭하는 '피조물'을 줄여 부른 말.
경애는 인천호프집 화재사건으로 친구 E를 잃은 후 우울증에 빠져 자신이 난폭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괴물이 된 듯 느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는 긴 연애를 원치 않는 방식으로 끝낸 뒤 깊이 상처 입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것)이 되고 만 시절을 겪었다.
상수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고압적인 아버지, 폭력적인 형과의 생활을 힘겨워하며 성장했다. 십 대 시절에는 은총이라는 유일한 친구를 화재로 잃었는데, 경애의 E와 상수의 은총은 동일인이었음이 나중에 드러난다. 은총은 두 사람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채 사라졌다.
회사에서 막무가내의 이기주의자, 꼴통, 고문관으로 비치는 상수. 회사에서 상수의 마음은 늘 무섭도록 이해받을 수 없는 것들이어서 그는 마치 설명서가 필요한 연마기나 절삭기 같은 기계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습기 차고 어두운 간이 창고 옆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경애. 그녀는 밀턴의 『실낙원』 중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라는 물음을 책상에 붙여 놓는 것으로 삶을 부정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실낙원의 이 구절은 메리 W. 셸리의 장편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첫 장에 쓰여있다. 이 문장이 '프랑켄슈타인'의 한 줄 요약처럼 느껴진다.)
삶의 어둡고 그늘진 이면과 친숙한 두 사람이 회사 일로 한 공간에 엮이게 되면서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서로의 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베트남 파견이라는 특수한 일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연민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보듬게 된다. 두 사람은 은총이란 친구와 ‘언죄다’란 인터넷 공간을 교집합으로 소통의 과정을 거치며 마음의 성장을 경험한다.
경애는 상수를 자기 마음의 질서가 있는 사람 다만, 자기 윤리를 외부와 공유하는 데 서툰 사람이라 생각하고, 상수는 경애를 아름다운 사람이라 느낀다.
경애의 마음은 성장한다. 타인에게 복무하던 감정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며. 거울을 보라 독려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그녀의 마음은 자랐다. E를 잃고, 또 산주와의 연애가 끝나며 겪었던 자기 파괴적 무력감에서 벗어난 것 역시 사람에 의해서였다. 일상을 포기하고 숨어버렸던 시절과는 다르게 불행을 건너가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것은 마음을 폐기하지 말라는 상수의 조언 때문이었다. 경애는 '마음에 관한 죄 없음'을 보장해 주는 듯한 그 말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들에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구원은 그렇게 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적극성을 통해서 오는 것" (P.307)
"고통을 공유하는 일은 이토록 조용하고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 (P.319)
경애는 부당한 회사의 인사 전보에 맞서 회사 앞 일인시위를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것)이 되고 말았던 과거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또다시 파괴적 애정관계로 복귀했던 기혼자인 옛 애인 산주를 집 앞에 남겨두고 들어와 이제 정말 남겨두어야 할 것들만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수 역시 ‘언죄다’ 사건으로 우여곡절을 겪어내고 문화콘텐츠 제작 회사에 취업한 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말.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나빴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상수의 마음 역시 성장한 것이다.
춥고 발이 시린 잠 중에 누군가 담요를 덮어주고 물을 데우는 풍경을 느끼는 상수의 모습, 그리고 상수가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단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힘이 나서 사는 게 아니다. 살아서 힘이 나는 거지." (P.137)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힘을 낼 수도 있으리라고, 그러니 지금 넘어져 있더라도 살아있으라고.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채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이 삶에서 언제 찾아올까 묻지만 그런 순간은 없다는 것을, 그러므로 그런 순간은 오지 않으리란 것을 경애는 잘 알고 있다. 인생은 손쓸 수가 없는 것임을. 모두가 유사한 삶의 비극에 노출된 채 아픈 몸을 고쳐가며 살 듯 마음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 함께 떨어져 내리는 그 일을 하며 우리의 삶은 지속되는 것임을.
“원래 인생이란 게 끝이다 싶을 때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끝이 계속 열리는 거잖습니까.”(P.135)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P.176)
‘마음을 다해 썼다’는 작가의 짧은 말이 무겁게 다가오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