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산문집 『고요한 읽기』
"200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튀르키예의 작가 오르한 파묵은 '사무원처럼' 일한다고 말한 바 있다. 소설가를 시인과 비교하는 과정에서 한 말이다. 그에 의하면 시인은 '신이 말을 걸어주는 자'이다. 그는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신이 자기에게는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시인이 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신이 자기를 통해서 말을 한다면 어떤 말을 할지 상상해 보려고 노력했다. 아주 꼼꼼히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이 바로 산문(소설) 쓰기라고 그는 말한다."(p233~234)
『고요한 읽기』, 이승우 , 문학동네
때때로 시집을 펼쳐본다. 시인이 적은 한 문장 한 구절에 가슴을 찔릴 때가 있다.
찔린 가슴에서 아릿한 피냄새가 풍기거나 넘치는 눈물향이 돌기도 한다.
시인의 언어는 신의 귓속말로 이루어진다.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낮은 음성으로 신은 단 한 사람, 시인의 귓가에 속삭인다.
그래서 '시는 문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소설가는 일한다.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다시, 어제 못했던 일을 오늘 마저,
그렇게 일상을 반복한다.
소설가는 들리지 않는 신의 음성을 날마다, 시마다, 순간마다
가늠하고 헤아린다. 상상한다.
적고 고치고, 다시 적고 또 고친다.
사랑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다만 쓰는 자의 시간만은 영원하다.
어제 썼던 것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쓰는 자는 쓰고, 또 쓸 것이다.
쓰지 못하는 어느 날이 당도하기 전까지.
일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꾸준함이다. 사랑으로는 꾸준히 일할 수 없다. 꾸준히 하려면 의무로 해야 한다. 사랑이 의무가 되어야 한다. 잘하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이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다.(p235)
*작가를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은 '마감'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의무가 등짝을 후려쳐야 펜이 앞으로 나간다는 말.
사랑이 의무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한때 사랑했으나 아스라이 멀어진, 자욱조차 희미한 것들의 형체가 우후죽순 떠오른다.
*『고요한 읽기』의 뒷부분에는 <고요한 읽기의 목록>이 첨부되어 있다.
내가 읽은 책을 목록에 체크해 본다. 열 권이 채 안 된다.
이래서 이승우 작가의 작품을 읽기가 수월치 않았구나.
나는 신이 말을 걸어주지 않는 자인데,
…
그냥, 더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