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혁명가의 죽음과 부활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by 장소록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p198)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 창비


지방공무원이셨던 내 아버지는 무뚝뚝한 분이었다. 꼭 필요한 얘기 외에는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알고 보면 마음이 퍽이나 여려서 딸아이가 속상한 일이 있어 제 방에 틀어박히면 안절부절못하며 문고리 주변을 서성이셨다. 만들기 숙제를 못하고 잠든 어린 딸을 위해 새벽부터 색지를 잘라 종이바구니를 엮던 아버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속 화자의 어린 시절 아버지 모습에 내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다. 사회주의자 아버지도 내 아버지처럼 그저 한 사람의 다정하고 사랑 많은 평범한 아버지였다. 감옥에 갇힌 채 긴긴밤마다 어쩌면 어린 딸과의 행복했던 날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했을 화자의 아버지. 하지만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한없이 무거웠던 딸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게 된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화자가 삼일 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겪는 일들이 이야기의 전부이다. 장례를 치르며 화자는 아버지가 세상에 만들어놓은 촘촘한 그물망의 실체를 생생하게 감지한다. 이 이야기는 그 그물망에 대한 기록이다.


화자의 아버지는 이십 대 시절 사 년 동안 빨치산이었다. 그 사 년은 아버지의 평생을 옭아맸고, 자식과 친척들의 삶마저 무력화시켰다. 이 글의 화자는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를 딴 '아리'라는 이름의, 빨치산의 딸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천형에, 가난까지 물려받은 그녀는 '세상 전체가 나를 적으로 삼은 것 같다'거나 '이데올로기가 나의 적'이라고 느끼며 자란다.


'빨갱이'라는 단어의 무지막지한 힘과 잔인함을 체험하며 자란 세대로서 나는 화자의 삶이 얼마나 지난한 고통의 연속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가난과 선명한 낙인이 덧씌운 삶 속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일상화하며 하루하루를 살다 간 화자의 아버지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게 '진정한 혁명가'란 타이틀을 붙여주고픈 이유다.


작가 정지아는 1990년, 남로당의 일원이었던 부모님의 삶을 재구성한 실화 소설 '빨치산의 딸'을 스물다섯의 나이에 발표했다. 이 작품은 이적표현물로 판금 조치를 당했고, 출판사 대표는 구속되고 정지아는 수배되어 수년간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기 전 '빨치산의 딸'을 먼저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2권으로 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에서 강제로 삭제된 빨치산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이 이야기 속 화자의 아버지가 어떤 인물인지를 좀 더 입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꿈꾸는 일은 쉽고도 아름답다. 그러나 꿈처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라고 소설가 방현석은 '빨치산의 딸'에 부쳐 말했다.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던 남한 사회에서, 자신이 믿는 이념을 놓지 않고 꿈처럼 살다 간 사람. 그러했기에 화자의 아버지의 삶은 실로 잔인했다. 그러나 장례 기간 동안 아버지와의 추억을 돌이키며 화자는 새삼 깨닫는다. 자신의 아버지는 진정한 혁명가였음을. 가부장제도, 소시민성도 극복한. 그리고 언제나 인간을 신뢰했던.


화자는 장례를 치르며 만난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가 그들의 시간 속에 각인된 모습을 발견한다. 아홉 살에 험악한 운명으로 아버지와 어긋난 작은아버지를 비롯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의 사연은 아버지의 삶과 연계되어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감동으로 가슴을 적신다. '한 번으로는 끝내 지지 않는 마음'이기에 자꾸만 장례식장에 오고 또 오는 그 사람들의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마음들이'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럽다고 화자는 말한다.


화자의 아버지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깨닫고 혁명의 필요성을 믿었기에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싸움에 지고 반역자가 된 그는 세상의 제 자리를 잃고, 돈도 없고 이름도 없고 정처 없는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뿐인 딸은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데 평생을 바쳤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너무 무거워 부모에게 어떤 자식이 되어야 하는지는 생각도 해보지 못한 채.


화자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지키며 아버지가 살아낸 삶을 돌아보며 비로소 생각한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라고.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통렬한 아픔이 남는 빨치산 아버지의 삶을 말하면서도 화자는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리고 화자의 집안에서 일종의 금기였다던 유머를 수시로 발산한다. 서늘한 장면에서도 웃음이 묻어난다. 독자는 노련한 작가의 문장에 눈물을 훔치며 동시에 웃음 짓게 된다.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던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는 말을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고, 정지아는 작가의 말에 적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해 그간의 오만과 무례와 어리석음에 용서를 구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죽음으로도 쉬이 지워지지 않는 한 혁명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표지 사진은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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