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게나치노 『이날을 위한 우산』
나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집중해서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관찰한다.(p64)
『이날을 위한 우산』 , 빌헬름 게나치노 , 문학동네
어제는 추적추적 종일 비가 이어졌다. 우산을 쓰기도, 그냥 맞기도 애매한 비였다. 살다보면 누구에게 하소연하기도 민망한, 추적추적 삶을 적시는 사소한 고난에 노출되는 일상이 이어진다. 우리는 축축함을 견디며 어찌어찌 하루치 고난을 통과하고 또 닮은 하루를 맞는다.
『이날을 위한 우산』의 주인공도 소소한 일상을 근근히 살아내는 사람이다. 그가 살며 느끼는 가장 근원적 감정은 '내가 내 내면의 동의 없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주인공의 유일한 수입원은 구두 테스터 업무로 받는 돈이다. 그는 새 구두를 신고 걸으며 테스트한 후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일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귀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약속받은 바로 그런 행복을 의미'한다고 느끼게 해주었던 연인 리자는 안정적인 생활기반을 갖추지 못한 그를 떠났다. '단지 교육만 많이 받은 아웃사이더' '현대판 거지'로 자신을 묘사하는 주인공은, 구두를 테스트하기 위해 도시를 유유히 걷고 사소한 사물과 평범한 사람들을 관찰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의 그는 먼지 보푸라기를 관찰하며 자신의 모습을 신랄하게 평가한다. '속이 거의 들여다보이고, 안은 연약하고, 밖으로는 쉽게 휘어지고, 사람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매달릴 뿐만 아니라 말도 없다'고. 이 글은 내 일기장 한 귀퉁이에도 (자아비판용으로) 그대로 쓰여 있을 것만 같은 문장이라 뜨끔하다.
그리고 그는 관목덤불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관목덤불은 '매일 저 자리에 있고, 도망치지 않고 저항하며, 한탄하지 않고 말이 없으며,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강하다'고. 그리고 자신도 관목덤불처럼 살고 싶다고.
먼지 보푸라기의 말없음과 관목덤불의 말없음이 같지 않다. 주인공이 희구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짐작되는 평가다.
오늘보다 조금은 더 단단해진 내일을 소망하며 작고 사소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은 서로서로 닮은 얼굴이기에, 주인공은 끝까지 이름이 호명되지 않은 채 그저 '나'이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고 했던 척 클로스의 말처럼, 주인공은 오늘도 구두를 테스트하기 위해 도시의 이곳저곳을 걷는다. 사소한 절망과 회한은 우리의 오늘을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오늘도 그저 일상을 산다.
'자신의 삶이 하염없이 비만 내리는 날일 뿐이고 자신의 육체는 이런 날을 위한 우산일 뿐'이라고 느끼는,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버티며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들. '나'와 닮은 나, 혹은 당신. 이 소설은 그런 이들을 위해 헌정된 이야기다.
그는 옛 친구 힘멜스바흐의 초라한 삶을 엿보며 잠시 충격과 슬픔을 느끼지만, 역시 어릴 적 친구인 수잔네 브로일러와 연인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고 예기치 않게 상담사로 부수입을 올리기도 하며, 신문의 기사 한 토막을 의뢰받아 쓰기도 한다.
특별한 일 없이 연속되는 지루한 삶은 먼지투성이 같이 느껴지지만 그 안의 인간 군상은 어찌어찌 오늘을 살아내며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저자는 "하찮을 정도로 작은 사물들의 변호사"라는 별칭처럼, 작고 사소한 것들을 주목한다. 그리고 세상의 가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 주인공의 눈을 통해 불통의 세상을 비판하고 일상의 평범함을 두둔한다.
오늘 아침은 빗살에 씻긴 천지가 말간 얼굴로 드러난다. 비 온 뒤의 청량함에 숨이 트인다. 오늘은 젖었던 마음도 툭툭 털어 내걸자. 뽀얀 볕에 습기를 말리고 또 하루를 걸어보자.
* 『이날을 위한 우산』은 2004년, 독일 최고의 문학상으로 인정받는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