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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록 Nov 11. 2024

중동-이슬람, 오해와 이해(2)

이희수 『이희수의 이슬람』

유럽인이 잔혹하게 핍박했던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생존이 보장됐다면, 이제 그들로 인해 나라를 잃고 고통에 빠진 팔레스타인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인류 사회의 또 다른 책무다.(p191)   


『이희수의 이슬람』, 이희수, 청아출판사


중동 지역은 최초로 문명이 시작된 곳이고, 그 문명의 결실은 유럽과 주변국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동-오리엔트 토양에서 그리스-로마 문화가 꽃피고 그것이 서양 문화의 뿌리가 되었음에도, 오늘날 서구는 이를 왜곡하고 과소평가한다. 이는 백인 우월주의와 서양의 기독교 중심 사상이 절대적 보편 가치로 유럽인의 인식 체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들에게 중동 문화는 이교도의 문화이므로 인정할 수 없고, 또 중동-오리엔트의 선진 문물을 전수받았다는 사실은 백인이 태생적으로 다른 인종보다 뛰어나다는 그릇된 자부심에 상처를 주므로 감출 수밖에 없다.)  


이슬람 제국은 1천 년의 대제국 시대를 거치며 아라비아반도에서 출발해 북아프리카 모로코, 스페인 남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이슬람 종교와 문화적 유산을 남겼다. 침체기의 중세 유럽에 영향을 끼쳐 르네상스의 결정적 동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20세기 이후 서구와 이슬람 세계의 갈등

7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는 이슬람 세계가 유럽에 대해 군사, 정치, 문명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역사 시기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복을 전후로 18세기부터 서구에 의한 이슬람 세계의 식민지화가 가속화되면서 '지배와 피지배'라는 숙명적 관계는 역전됐다.


제1, 2차 세계대전 전후로 탈식민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슬람 지역 대부분이 쪼개져 57개 개별 국가로 독립했지만, 서구의 '이슬람 편견'은 오늘날까지도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이슬람포비아(이슬람 혐오증)'로 이어지고 있다.




오슬로 평화 협정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도 오랜 세월에 걸쳐 해결의 노력이 이어져 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사이에 체결된 '오슬로 평화 협정(1993년)'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상호 공존의 내용을 담은 평화 협정은 협상 당사자인 이스라엘 이츠하크 라빈 수상이 극우파에게 암살당하고 강경파 샤론이 새로운 수상이 되면서 다시 갈등의 형국이 되었다.(오슬로 협정 자체도 이슬라엘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 많았지만 기울어진 채로라도 평화를 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협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우파 정부가 집권하며 사실상 협정을 파기하여 팔레스타인 땅에 평화를 정착시킬 절호의 기회가 날아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전에 두 국가를 상호 인정하는 '두 국가 해법'을 원칙으로 협상을 벌여왔으나 트럼프가 나서서 '유대인 정착촌'(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 점유한)을 이스라엘에 내주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겠다는 친이스라엘, 반팔레스타인적 협상안을 제시하면서 평화 공존의 원칙은 무색해졌다. 이 협상안은 팔레스타인에 의해 즉각 거부되었다.(예루살렘은 1,330년 동안 팔레스타인의 도시였다. 트럼프의 제안은 돈을 줄 테니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협박이었다.)


9·11 테러 이후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서구 사회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2001년)하여 20년간 전쟁을 벌였고, 또 9·11 테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라크를 침공(2003년)했다.(범인 19명 중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었다.) 미국은 9·11 테러(3천 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최소 6천여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한 가장 참담한 피해를 일으킨 사건)를 이용하여 자국의 전략적 이익 극대화와 중동에서의 석유 확보, 이스라엘 안보 확보라는 전통적인 미국의 중동 정책 기조를 더욱 강화해 나갔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23년이 지났다.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서구는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모든 위협(배고픔과 인간의 기본권 사수를 위한 싸움조차)을 '테러'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응징해 왔다. 대테러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중동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졌다. 팔레스타인은 합법적인 정치 조직마저 테러 조직으로 분류되면서 국제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여 원초적 권리마저 훼손당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왔다.  


가자 전쟁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요르단강 서쪽 지역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아파치 헬기를 배치하고, 드론 공격을 감행하며, 이스라엘군 병력 약 1000명을 동원해 약 90명의 팔레스타인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등 무력 대치의 수준을 높이며 압박을 가한 결과로 일어났다.(이스라엘 내에서는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개편안을 추진하자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며 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무력 압박이 점점 강도를 높여오자 혼란한 이스라엘 정국을 틈타 공격을 감행했다.)  


중동의 오늘은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이 여전하고, 평화는 멀고 전쟁은 가깝다.  



*『이희수의 이슬람』은 가독성이 좋고, 이슬람에 대한 객관적 정보가 많아 중동-이슬람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 무슬림의 삶, 이슬람의 현재, 한국과 이슬람 교류의 역사에 대해 궁금증을 지닌 독자라면 많은 정보를 기대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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