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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 eden Dec 27. 2020

슬기로운 육아생활

가장 보통의 육아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육아엔 무수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많은 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일거다. 하지만 요즘처럼 바로 옆집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의도적으로 모르고 사는 시대엔 참 먼나라 얘기로만 느껴진다. 조리원 퇴소 후, 나는 산후도우미도 양쪽부모님 도움도 받지 않고 아이를 돌보고 싶다고 했다. 타인의 도움은 이정도면 충분히 받았으니 이젠 나와 남편, 우리 힘만으로 해보자는 이유였다. 초보엄마의 애정과 패기가 똘똘 뭉친 선택이었지만 이를 후회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기가 이렇게나 짧게 잔다는걸, 우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걸, 육아는 이론과 다르다는걸, 내몸이 여전히 정상이 아니라는 걸 간과했다. 화려한 조명 대신 피로와 좌절감이 나를 감쌀 때마다 호화로운 감옥처럼 느껴지던 조리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천국을 나오니 그곳이 천국이었다 걸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힘에 부칠 때는 말그대로 고생을 사서 하는 내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지만 그나마라도 견딜 수 있었던 건 남편이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벌벌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씻기고, 과학실험이라도 하듯 정량으로 분유를 타고, 울음을 달래려 자세를 바꿔가며 안고, 번갈아 쪽잠을 자던 시간들. 작은 아기 하나에 몰두하며 한 인간이 성장하는 데 얼마나 많은 손들이 필요한가를 여실히 느낀 시간들이었다. 아니 그보단 혼자 아이를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를 절실히 느꼈다고 해야 맞겠다. 그런 생고생의 시간들은 이제와 돌아보니 잘한 선택이었다고 도닥일 수 있는 성취감과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도록 훈련된 남편의 육아 스킬, 덤으로 전우애를 선사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덕분인지, 남편이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오랜만에 다시 함께 육아를 하니 홀로 육아에 비하면 세상 수월하다. 몸도 마음도 조금 편해지니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더욱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주양육자는 괴롭고 아이를 빚더미 취급하는 듯한 말이라 늘 싫었던 ‘독박육아’가 어떤 의미로든 사라져야만 한다고 다시 한번 느끼는 이유다.

그렇다. 이 시대에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이 아니라, 남편이 필요하다.



고맙다, 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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