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으로 아이와 엄빠 모두 포식하기
첫 제주도 여행 당시, 들뜬 마음에 줄줄이 적어둔 할 일 목록 가운데 단연 첫 번째는 이거였다.
바닷가에서 해녀가 직접 잡아서 손질한 해산물 먹기
부리나케 용두암으로 달려가 제주 해녀의 투박한 손길이 닿은 해산물 소쿠리를 받아 들었는데, 그 안에 가지런히 썰린 전복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짠내를 품고 꼬득꼬득 씹다 보면 단내가 올라오는 전복회에 한라산을 곁들였던 기억- 분명 이전에도 먹어봤을 텐데 그 이후 나의 첫 전복은 용두암에 머물러 있다. 음식에 뒤따르는 무드가 중요한 나에게 전복, 소주, 바다라는 그날의 조화가 깊은 인상을 남긴 탓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직접 전복 양식하는 분을 찾아가 전복을 사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열정이 과했다 싶지만 그때는 왠지 그게 더 귀하고 맛있을 것만 같았고, 딸내미가 사들고 온 전복을 감탄하며 드시는 아빠 모습에 옳은 선택이었다며 뿌듯해했다.
이제는 ‘그곳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사실상 거의 없다. 집에서 오늘 밤 제주도 전복을 주문하면 내일 아침상에 올릴 수 있는 시대다. 국내뿐 아니다. 라스베거스에서의 숙취를 달래주던 버거도, 발리의 거친 파도를 타고 마셨던 맥주도, 스위스에서 엄마를 떠올리며 정성스레 골랐던 초콜릿도, 꼭 그곳에 가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자꾸만 서운해진다. 여행을 꿈꾸는 이유 중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큰 몫을 차지하는 사람이라.
물론 요즘처럼 여행을 꿈꿀 수도 없는 상황에 그 편리함마저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다. 그저 어디든 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또다시 전복을 장바구니에 담고 주문 버튼을 눌러본다.
먼저 전복은 솔로 거뭇한 표면을 닦아내고 이빨을 잡아 뺀다. 엄빠를 위한 갈비찜용 전복은 통째로 넣을 거라 빼놓기로.(아이 핑계로 포식하기)
아이 전복죽에 들어갈 전복은 패각에서 떼어내는데 내장이 없는 부분 쪽부터 긁어 들어가야 온전히 분리할 수 있다. 내장은 갈아서 불린 쌀 혹은 지어둔 밥에 골고루 비벼놓는다. 이렇게 하면 내장의 고소한 맛이 밥에 배어든다. 참기름 칠한 냄비에 불린 쌀을 볶다가 쌀이 하얗게 익으면 육수를 넣고, 팔팔 끓어오를 때 잘게 자른 전복살, 양파, 당근, 부추 등을 넣어 익힌다. 따로 소금 간은 하지 않고 불을 끈 후 참기름 또옥, 깨 솔솔 해서 마무리한다.
[이든 밥상]
전복죽. 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