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 eden Jan 22. 2021

겨울 냄새 품은 어묵탕

아이 반찬부터 맥주 안주까지 아우르는 수제 어묵

소설 ‘향수’의 주인공은 체취가 없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멸시받다가 결국 향기에 집착하는 살인자가 된다. 고작 그런 이유로 인간이 그토록 광적인 집착을 보일 수 있을까 싶다가도, 품에 안긴 아이에게 코를 파묻고 그 살냄새를 맡다 보면 냄새라는 건 그럴만한 힘이 있겠다고 수긍하게 된다.


기억이나 감정은 종종 냄새를 통해 저장되기도 한다. 아마추어 수영선수인 남편은 수영장 락스 냄새를 맡으면 대회에 출전했던 기억이 상기돼 가슴이 뛴다고 했다. 한 친구는 반려견 코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회사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잊는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특정 브랜드에서 나는 로션 냄새가 꼭 어렸을 때 엄마에게서 나던 냄새 같아 그것만 쓴단다. 이제와 깨닫는다. 냄새는 누군가의 예상치 못한 깊숙한 구석을 꺼내 보여준다는 걸. 그래서 묻고 싶어 진다.

“어떤 냄새를 좋아하세요?”


나는 겨울의 추위는 싫어하지만 ‘겨울 냄새’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요상한 취향이 있다. 마른땅 냄새, 청량한 겨울비 냄새, 가라앉은 기름 냄새, 두꺼운 옷에서 나는 각자의 묵은내.. 그 가운데 찬바람을 비집고 콧속으로 돌진하는 길거리 음식 냄새를 특히 좋아한다. 똑같은 냄새여도 겨울의 그것은 다른 계절과는 분명 다르다.

연기 풍기며 익고 있는 찐만두의 눅진한 냄새, 옥수수 찌는 트럭에서 풍기는 단내, 붕어빵 기계가 돌아가며 내는 고소한 냄새, 모두가 내 코를 즐겁게 하지만 나의 최애는 역시 뜨끈한 국물 속에서 조용히 끓고 있는 어묵 냄새다. 겨울의 찬 공기를 뚫고 퍼지는 이 냄새는 후각의 즐거움을 넘어 가슴속을 훈훈하게 데운다. 이미 뜨끈뜨끈한 어묵 국물을 한 모금 마신 것마냥.

이런 겨울 냄새들이 왜 좋을까 생각해보면 추억때문이려나 싶다. 퇴근하던 아빠 손에 들려있던 붕어빵, 할머니를 위해 꾸깃한 몇 천 원으로 샀던 옥수수, 임신했을 때 남편에게 사다 달라 주문했던 만두, 엄마와 장보고 들어오던 길에 호호 불며 먹었던 어묵.. 그 냄새들이 어딘가 저장돼있다가 콧속에 찬바람이 들면 휘리릭 등장해 그때의 감정을 깨우고, 추운 겨울이 조금 따뜻해진 기분마저 들게 만든다. 유독 겨울 냄새를 좋아하는 이유다.


마스크를 거쳐 흐릿해진 길거리 어묵 냄새로 올겨울을 보내는 것이 아쉽다. 아무래도 직접 만든 수제 어묵으로 어묵탕을 만들어 집안 가득 냄새를 풍겨봐야겠다.




육수는 다시마와 파, 시원한 맛을 담당할 무를 기본으로 한다. 무 한 덩이는 적당히 익으면 꺼내서 숭덩숭덩 잘라뒀다가 어묵탕 고명으로 쓴다. 아이 음식이라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을 생각으로 감칠맛을 끌어올릴 게 한 마리를 넣었다. 슬쩍 까 보니 알이 꽉 차서 살살 발라 어묵과 함께 내어줘도 좋겠다.


생각보다 첨가물이 많이 든 식품이 어묵이다. 그래서 맛있나 싶지만. 아이를 위해 첨가물 없는 어묵을 만들기로 했다.

당근, 브로콜리, 양파, 대파 등 냉장고를 털어 나온 채소를 고르고 잘게 다져준다. 채소를 한번 볶아 수분을 날리면 물기 없이 단단한 어묵을 만들 수 있다. 대구살 120g과 새우살 100g 다진 것에 볶아서 식혀둔 채소, 밀가루 한 스푼, 전분 한 스푼을 넣어 치댄다. 찰기가 생길 때까지 치대 주고 너무 묽다 싶으면 밀가루를 조금씩 추가해 손에 너무 들러붙지 않는 농도로 만든다. 넓적한 도마나 쟁반에 반죽을 올리고 젓가락으로 떠서 옆으로 굴리며 길쭉한 어묵 모양을 잡아준다. 길거리에서 어묵 반죽을 다져 기름에 퐁당 넣는 달인들을 이미지 트레이닝하면서.

종이호일을 깐 찜기에 모양 잡은 반죽을 가지런히 올리고 15분 정도 쪄내면 식욕을 자극하는 어묵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남편이 등장하는 타이밍이다. 찐 어묵은 바로 먹어도 맛있고 기름 두른 팬에 튀기듯 구우면 엄빠의 맥주 안주로 탈바꿈한다. 아이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렇게 사라진 어묵이 여러 개. 젓가락 위에 줄지어놓고 물기를 날리며 식혀서 랩에 싸 냉동시켜두면 아이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 꺼내 먹이기 좋다.


[이든 밥상]

어묵탕. 흑미밥. 메추리알장조림. 채소볶음

이전 05화 전복죽과 전복갈비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