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마지막으로 뭘 먹겠냐 물으신다면
미국에서는 사형 집행 직전의 사형수들에게 원하는 메뉴를 주문받아 ‘최후의 만찬’을 제공한다고 한다.
정해진 금액 내 교도소 안에서 조리 가능한 음식이어야 하는데, 그 메뉴가 실로 다양하다. 수십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의 지극히 평범한 가정식, 주체할 수 없는 탐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거한 육식, 기이한 정신세계를 반영한 듯한 올리브 한 알까지. 나는 그 메뉴들에서 평범하고 싶은 갈망, 지독한 외로움, 텅 빈 영혼, 마구잡이식의 욕구, 무절제를 엿보았다. 어쩌면 ‘최후의 만찬’에는 단순하게는 음식 취향, 짧게는 한 인간의 결정적 순간, 길게는 인생 전체가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에 예수와 열두 제자의 마지막 식사라는 표면적 의미 외에 배신과 음모의 순간, 훗날 벌어질 비극의 전조를 담았던 것처럼.
실제로 나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종종 생각하는데, 그 답은 언제나 한치의 고민 없이 동일하다. 그건 바로 ‘엄마의 돼지고기 김치찌개’. 가능하다면 엄마가 무친 오징어포 무침과 달걀후라이 추가요-
씹는 맛이 있는 돼지고기 사태나 앞다리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다진 마늘도 파도 없이 그저 잘 익은 김치와 김칫국물로 깊은 맛을 낸 것이 엄마의 김치찌개다. (그 맛을 따라 하고 싶어서 노력하다가 발치에도 못 미치겠기에 엄마에게 비법을 물었더니 ‘다시다를 넣어’라고 했다... 그 이후 마법가루의 힘을 빌리는데 그래 봤자 여전히 엄마 맛의 정강이 정도다.)
어린 나는 엄청난 편식쟁이였다. 특히 김치에 대한 거부가 심했는데 무슨 식성인지 ‘김치찌개’만큼은 끝내주게 잘 먹었다. 그렇게라도 내가 김치 한 조각을 먹으면 엄마는 큰 임무 하나를 완수한 듯 뿌듯한 얼굴을 했다. 성인이 돼서도 힘든 프로젝트를 마쳤을 때, 크게 앓고 난 뒤, 여행을 다녀왔을 때, 결혼 후 친정에 갈 때, 엄마가 우리 집에 올 때, 뭘 먹고 싶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김치찌개’였고, 엄마는 그런 나를 위해 늘 김치찌개 한솥을 끓였다. 엄마의 김치찌개, 엄마가 해주는 반찬은 한마디로 나에게 ‘홈스윗홈’이었다.
아이에게 내 음식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나는 내 아이에게 마지막 순간에 먹고 싶은 음식, 떠올리면 따뜻하고 기분 좋고 든든한 음식을 해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아이 밥을 하면서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에 보람된 날도, 정성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한 날도, 이제 그만 사 먹일까 싶게 몸이 고된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집밥 먹이기를 조금 미련하다 싶게 계속 해온 건, 평범하지만 따뜻한 집밥의 기억들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날 접하게 될 수많은 음식들을 벽 없이, 격 없이 즐기고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내 엄마의 음식을 통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밥을 한다.
+ 글을 마치면서 남편의 대답도 궁금해져 물어봤는데, 죽기 전에 내가 끓여준 고추장 짜글이를 먹고 싶단다. 이 남자, 인생 사는 법을 안다.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애호박볶음. 정말 쉬운데 잘 먹어줘서 자주 하게 되는 반찬이다.
끓는 물에 부채 모양으로 썬 애호박을 넣어 익힌다. 한번 더 볶아줘야 하기 때문에 너무 푹 익지 않도록 3분 정도 끓이다가 냄비에 남은 물은 쪼로록 따라내고 기름을 조금 둘러준다. 애호박이 골고루 기름옷을 입으면 밥새우를 한 숟갈 넣어 함께 볶는다. 애호박의 단맛에 밥새우의 짭쪼름한 맛이 더해져 아이도 좋아하는 마성의 단짠 반찬이 완성된다. 양송이나 감자 등의 재료를 추가해도 좋다.
[이든 밥상]
쌀밥. 시금치홍합된장국. 애호박양송이볶음. 감자당근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