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삶
내 취향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몽환'이다. 영화도, 음악도, 그림도 항상 몽환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느끼면 이상하게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어딘가를 항상 부유하는 삶, 이곳에 있지만 이곳에 있지 않은 삶, 혹은 더는 있고 싶지 않은 삶이던가. 그래서인지 늘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붕 떠오르는 아찔하고, 풍부하고, 나른한 느낌을 갈망했다.
꿈에서 막 깨어나 현실과 무의식세계의 사이에서 부유하는 찰나의 시간을 사랑했다. 늦은 밤, 오렌지 빛 터널을 지나며 강렬하지만 동시에 나른한, 도시의 불빛을 빠르게 지나가는 울렁이고 쓸쓸한 풍경의 냄새를 사랑했다. 너무나 아름다워 시선을 뗄 수도 지나칠 수도 없는 광경이었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를 정도로, 지금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의심될 정도로.
다음생에는 꼭 새가 되어야지, 그래서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훨훨 날아가야지. 늘 비행하고, 날아가고, 부유하는 갈망을 품어왔다. 난 항상 현실에서 17cm 떠오른 곳에서 살아가고 싶었다.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아주 휘둘리고 싶지는 않았다. 남들보다 17cm만 떨어져서 현실을 보고 싶었다. 이를테면 글을 쓰고, 먼 환상에 젖어들고, 흘러가듯 유영하고, 애쓰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는 지금 몇 센티나 떠있나? 글쎄... 기껏해야 5cm는 되었을까. 17cm까지 아직 한참이나 멀었다는 건 확실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참아야 했고, 참으려면 자아를 없애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차분하고 친절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었지만 동시에 점점 기괴해졌다. 완전히 거세되지도 못하고 딱딱하게 굳어 갈변된 덩어리를 안고 살아갔다. 그 덩어리는 잊혀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선 가장 중심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했다. 내가 똑바로 직시할 때까지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겠다는 듯. 나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그래서 이제는 날 괴롭게 하는 모든 현실에서 세 발자국만 뒤로 가기로 했다. 해탈이라던지 초월이라던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다만 타인의 시선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무엇에도 연연해 하지 않고 모든 걸 비워내 열반에 이른 사람처럼. 어쩌면 반쯤은 맞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부유하고 싶은건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모든걸 가지고 싶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간극이 나를 현실에서 짐짓 비껴서 떠오르게 만든다. 모두가 내게 강해보인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저 도망쳤을 뿐이다. 내 삶이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살아있음이 의심되는 감각들에 반쯤 몸을 맡긴 채. 참으로 무던하고 고루한 삶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