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준비하는 시간
오늘은 내 졸업식이다.
카페에서 취업 준비를 하다가 오후 5시가 지나서야 알았다. 오늘이 내 졸업식 날이었다는 걸.
학위복을 입고 웃으며 사진을 찍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이상해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항상 졸업식마다 다른 곳에 가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대학교 오티를 들으러 갔고, 대학교 졸업식 날에는 카페에 박혀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니.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중학교 졸업식 때는 고등학교 입시와 선행, 초등학교 졸업식 때는 늦게 전학 와 아직 어색했던 친구들과 억지로 웃었던 사진과, 빨리 중학교로 가서 새로 시작하고픈 마음뿐이었다.
졸업식 날의 뭉클하고 애틋하고 기특한 감정. 그날의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살면서 한 번이라도 있던가? 생각해 보면 살면서 기껏해야 4번인데, 딱 4일인데. 그중 한 번을 제대로 누린 기억이 없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졸업식을 갈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졸업식에 참여하든 말든 나는 이미 졸업을 했는데, 왜 가야 하지? 무슨 의미가 있지?' 그리고 '지나간 인연보다는 새로운 만남과 시작에 투자하는 게 훨씬 의미 있지'하는 생각들이 항상 깔려 있었기에.
왜 항상 마지막 날을 즐기지 못했을까. 모두가 이별을 할 때 나는 이미 다음 단계를 향해 발을 뻗느라 바빠 작별인사조차 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여유가 없었던 걸까. 그래도 내 인생 마지막 졸업식인데. 지나간 인연 대신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것만이 의미 있는 일은 아니었을 텐데. 어쩌면 나는 이미 많은 걸 놓치고 살아온 지도 모르겠어. 친구 관계에 미련도 없이 자기 계발에만 목매던 내 학창 시절 12년. 지나고 보니 성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친구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 소중한, 어쩌면 다신 돌아오지 않을 인연들을 전부 내 손으로 놓쳐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덕분에 어리면 어릴수록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가지지 않는 게 유리하다는 것도 배웠고 내 판단이 항상 옳지는 않다는 것도 배웠다. 그래도 뭐 어쩌랴,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는데. 이제 와 후회해 봤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해 봤자 한계가 있다는 것도. 그 작은 교실 안에서 매일같이 부대끼며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 학창 시절의 확실한 특권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지. 그리고 나는 그걸 쉽고 가볍게 여기다 놓쳐버렸다는 것도.
이따금 갈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도, 환멸이 일며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치미는 것도, 알 수 없는 멀미로 속이 울렁거리는 것도 전부 이 때문일까. 억누르고, 참고, 다스리는 것 외의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이탈 욕구가 자꾸 차오른다. 쉽게 말해 탈선. 나는 언젠가 꼭 선을 이탈해 벗어나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표지판 밖으로.
'그래도 오늘 하루만은 낭만을 즐기고, 그동안 고생했던 시간도 돌아보면서 그렇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다음을 넘으면 또 다음, 다음을 넘으면 그다음 단계가. 계속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기분이다. 남의 눈살에, 가족들 눈치에,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정신없이 앞으로, 정처 없이 또 앞으로. 문득 끊임없는 퀘스트처럼 쏟아지는 이 단계는 언제쯤 끝이 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끝이란 게 과연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