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도망치다 보면 어디로 가게 되지?
며칠 전 읽은 소설이 떠올랐다. 사랑에 빠진 시한부 소녀와 인간을 홀리는 능력을 가진 아름다운 인어의 슬픈 사랑 이야기였다.
소녀는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 사람들과 하나둘 나름의 작별 인사를 준비한다. 자신을 아껴주는 삼촌에겐 이렇게 말했다.
“참고 참고 또 참다 보면, 어디까지 참아야 해? 도망치고 또 도망치다 보면 어디로 가게 되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은 대로 살아 삼촌, 늘 하고 싶은 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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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구는 파티시에가 꿈이라고 했다. 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그 집에서 나는 그 아이의 요리를 먹는 걸 좋아했다. 한 친구는 피아노를 참 잘 쳤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면, 그 애에게서 꼭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둘 다 지금은 꿈꾸던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꿈이 있는 자들의 눈은 사랑에 빠진 자의 눈만큼이나 반짝인다. 그 눈을 보고 있노라면, 질투날만큼 아름답고 동시에 그런 감정도 잊을 만큼 예쁘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전부라고 믿을 만큼.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항상 참으며 살아왔고, 아직까지도 삶의 매분 매초를 버티고 애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아왔지?
내가 그토록 노력하고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것들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건가?
내가 내린 답은... 아니었다. 그냥 남들도 다 하니까. 다들 이렇게 사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하니까, 안 그러면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너무 아까우니까.
생각해 보니 답이 너무 허무하고 보잘것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 이유들로 지금까지 그냥 관성처럼 무작정 열심히만 살아왔던 거다.
당장 세계여행을 떠나도, 갑자기 다른 진로를 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하더라도. 실은 전부 할 수 있다. 내가 마음먹으면 할 수 없는 건 없었다. 그러나 난 뭘 위해, 뭐 때문에 망설이는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열망하는 법을 잊고. 모든 의욕과 용기와 생동감을 잃은 기분이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 이곳에서 나는 생기를 잃고 천천히 메말라가다 증발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