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서

책임의 방향

by 하린

임대인의 요청서가 올라왔다. 천장에 길게 이어진 라인 조명이 번개 치듯 번쩍거리며 지지직 소리를 내고, 차단기가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가서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접촉불량으로 인한 문제일까.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며 임차인이 기다리고 있는 요가학원으로 향했다.


수업이 없는 시간의 학원에 들어섰을 때 조명은 멀쩡하게 켜져 있었다. 아침에 와서 처음 켤 때 잘 안 켜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켜지긴 하는데 조금 더 지나면 번쩍거리기 시작한다는 설명이었다. 마침 조명이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스위치를 껐다.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차단기는? 상황을 듣고 확인해 본 결과 떨어지는 차단기는 조명 회로가 아니라 전열, 즉 콘센트 쪽 차단기였다. 임대인이 전한 말과 임차인이 설명하는 증상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이런 경우가 가끔 있다. 나는 그러려니 하며 하나씩 묻고 살피기 시작했다.


임차인은 얼마 전 누수 이후로 전등 깜빡임이 심해졌고 차단기 트립도 잦아졌다고 했다. 겨울에는 바닥난방과 히터를 함께 사용하면서 차단기가 종종 떨어졌지만, 요즘은 난방기구를 쓰지 않는데도 가끔 내려간다고 했다. 나는 차단기의 용량을 확인했다. 20A(암페어). 정확히 계측하지 않아도 난방기구 2종류를 동시에 쓰기에 넉넉한 용량은 아니었다. 과부하가 반복되면서 차단기 자체가 손상됐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조명은 왜 번쩍일까.


조명을 하나씩 점검하자 느슨하게 연결된 접촉 지점이 두 군데 드러났다. 전에도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천장에 브래킷으로 고정된 T5 조명이었는데, 그때는 접촉불량 부분이 이미 탄화되어 거뭇하게 변해 있었다. 결국 전체를 교체해야 했다. 접촉이 제대로 체결되지 않으면 전류가 흐르면서 저항이 커지고 열이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조명이 번쩍거리고 심하면 스파크가 튀기도 한다. 그날 요가학원에는 T33이라는 이름의 라인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비슷한 현상이었다. 한 곳은 임차인이 보유하고 있던 조명으로 교체해 체결을 안정시켰지만 다른 한 곳은 구조를 다시 잡아야 할 상태였다. 브래킷 위치가 어긋나 있어 미세한 간극이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인 조명은 한 지점이 틀어지면 그 뒤가 연쇄적으로 흐트러진다. 점검만 하러 간 날이었기에 공구는 충분하지 않았고, 일부는 임시로 걸쳐두고 일단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임차인은 계속 누수를 언급했다. 누수 이후부터 증상이 심해졌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하나의 도식이 그려져 있는 듯했다.


누수 -> 조명 이상 -> 차단기 트립.


하지만 내가 본 구조는 달랐다. 조명은 접촉의 문제였고 전열 차단기는 별개의 회로였다. 물론 부실시공으로 회로가 섞여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현재 증상을 설명하기에는 접촉불량과 과부하 이력이 더 직접적이었다. 어쨌든 나는 번쩍거리는 등을 안정화시키고 돌아왔다. 이제 임대인에게 상황을 보고하면 될 일이었다. 조명은 내가 다시 가서 조정해 놓을 수도 있었지만 차단기 교체는 전기공사면허를 가진 업체만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차후의 작업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이다. 나는 오늘의 출장비와 작업비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임대인과 통화를 했다. 그는 임차인이 작업 비용을 부담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렸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임차인과 통화를 나눈 임대인의 말은 바뀌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전체 상황이 보였다. 조명은 임차인이 인테리어 과정에서 시공한 것이었고, 임대인이 요청서를 올린 이유는 이 모든 문제가 임차인의 주장처럼 누수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책임의 방향을 가리기 위한 방문이었던 셈이다. 임차인은 차단기 트립 문제를 비롯해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작업비를 줄 수 없다 했고, 임대인은 내가 조명을 가져가서 교체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체 비용을 주겠다고 했지만 임차인이 갖고 있던 여유분으로 교체만 진행했기 때문에 출장비만 지급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이동 비용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땀을 흘리며 작업을 했다. 그러나 자재를 내 돈으로 구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용 지불이 거부됐다. 작업 자체가 인정되지 않은 셈이었다. 이런 경우 사실 별다른 방법은 없다. 견적에 단가표가 첨부되어 있긴 했지만 사전에 구체적인 금액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임 소재도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었다. 나는 결국 전체 비용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내 노동의 가치를 이런 식으로 흥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임차인에게 문자로 연락했다. 아침에도 조명이 제대로 켜지는지 물었다. 조명은 정상적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임차인은 동영상과 함께 꽤 긴 문자를 보내왔다. 차단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방어적인 설명이었다. 나는 건조하고 차분하게 사실관계를 정리한 답문을 보냈다. 그리고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돈은 받지 못했다. 받을 생각도 없었다. 그저 내 작업의 결과만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런 식의 느슨한 계약은 항상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그날의 일을 통해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황 인식은 생각보다 크게 어긋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내 노동의 대가를 지키려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입장을 더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


책임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항상 불안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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