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20분과 4시간 사이

완성된 빛 아래의 시간

by 하린

3구 거실등과 방등 1개. 나는 그렇게 합의하고 출발했다. 거실등은 1시간, 방등은 20분. 작업 시간은 대략 계산이 가능했다. 계약은 단순했고,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합의된 조건 안에서 움직이는 일은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천장은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거실에는 오래된 형광등이 달려 있었다. 두꺼운 유리커버가 달린, 내가 가장 철거를 꺼리는 종류의 등. 왜 사전에 기존 등 사진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안다. 고객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채팅으로 진행되는 상담은 점점 효율을 향해 기울어진다.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합의하고, 그 범위 안에서 출발한다.


나는 왼쪽의 작은 등을 먼저 떼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알았다. 이것은 단순 교체가 아니겠구나. 천장은 매입 구조였고, 그 위로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3구짜리 거실등을 달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드러난 채로 남게 될 것이 분명했다. 고객 부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최대한 쉽게 말해 보았다. 구조를 설명하고, 가려질 부분과 드러날 부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이 나왔다.


“그럼 저건 반품해야겠네.”


LED 모듈을 기존 등기구 안에 부착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모듈이 없었다. 고객이 근처 마트에 가서 사 오겠다고 했다. 나도 따라나섰다. 연휴 끝물의 마트는 숨이 막힐 만큼 붐볐다. 사람들로, 그들을 태운 차들로, 그리고 서로의 동선으로. 한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우리는 모듈을 안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3시 40분에 도착한 현장은 어느덧 5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서둘렀다. 등기구 안의 소켓과 안정기, 커넥터를 떼어냈다. 그런데 전선이 엉망이었다. 피복은 검게 그을려 있었고, 갈라진 틈 사이로 구리선이 드러나 있었다. 선의 여유 길이가 짧아 결국 무거운 등기구까지 철거해야 했다. 두 손으로 모자라는 하중은 머리로 대신 받쳤다. 등기구를 위로 밀어 올린 채 나사를 풀고, 천천히 내려놓았다. 전선은 다행히 연장하면 사용할 수 있었다. 10cm 정도를 잘라내야 했지만.


선을 정리하고, 등기구를 다시 끼우고, 모듈을 배열하고, 배선을 연결하고, 유리커버를 씌웠다. 하나의 빛이 다시 완성되는 데까지 두 시간이 더 필요했다. 도착한 뒤로 네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는 1시간 20분을 계산하고 왔다. 시간당 견적은 아니지만, 시간과 무관한 일도 아니다. 어느 정도의 작업 강도와 소요 시간은 암묵적으로 단가에 반영된다. 게다가 오늘 나는 등기구 철거와 모듈 설치를 동시에 수행했다. 각각 별도의 단가가 적용되는 작업이다. 그러나 고객이 그 차이를 알 리 없다.


고객은 완성된 빛을 본다. 나는 그 아래에서 소비된 시간과 힘을 안다.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해시킬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현장 추가요금에 대해 많은 소비자들은 ‘바가지’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때로는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조건이 달라졌기 때문에 다시 계산해야 하는 순간도 분명히 존재한다. 합의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전제가 달라졌을 뿐이다. 나는 오늘 추가요금을 청구하지 않았다. 충돌도 없었고, 불쾌함도 남지 않았다. 대신 하나의 사실을 보게 되었다. 노동의 강도는 합의로 결정되지 않는다. 조건이 바뀌는 순간, 시간은 조용히 늘어난다.


1시간 20분과 4시간 사이. 보이는 노동과 보이지 않는 노동 사이. 합의와 현실 사이. 그 간극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앞으로 내가 계속 배워야 할 또 하나의 기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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