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가닥의 전선

강도와 수입의 그래프

by 하린

강도와 수입의 그래프

2026년 2월 21일 토요일. 하루에 현장을 두 곳 도는 날이었다. 오전에는 상가, 오후에는 아파트. 작업 내용만 보면 단순한 교체였다. T5, 다운라이트, 거실등과 방등. 하지만 양이 꽤 많았다. 이런 경우 포장을 뜯고 밑작업을 해놓는 것만 해도 40분에서 한 시간까지 걸린다. 작업에 포함되진 않지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과정이다. 공중에 붕 떠 있는 노동처럼 느껴진다. 이때 마음은 꽤나 급해진다.


첫 현장은 apm 도매상가였다. 다운라이트 11개와 T5 10개를 주광색에서 주백색으로 교체하는 작업. 옷이 사는 색온도라는 것이 고객의 표현이었다. 나도 동의하고 추천했다. 전날 이미 페인트 작업이 진행되어서 등기구들은 대부분 제거되어 있었다. 덕분에 작업은 예상보다 수월했다. 포장을 뜯고, 등을 교체하고, 점등 확인을 반복하는 익숙한 리듬. 특이했던 점은 조광기였다. 등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 하지만 고객도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디밍 기능이 없는 조명을 구매한 뒤에야 조광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셈이었다. 디밍이 지원되지 않는 조명을 조광기에 연결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깜빡임, 미세한 소음, 수명 저하 등. 그래서 나는 조광기를 최대 밝기로 고정해 사실상 일반 스위치처럼 사용하도록 안내했다. 작업 시간은 포장을 뜯는 시간까지 합쳐 약 한 시간 반. 수월한 작업이라고 생각했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라서 인지 벌써 기운이 달리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졸음이 쏟아졌다.


다음 현장은 입주 인테리어 중인 아파트였다. 가격 협상 과정에서 이미 한 차례 피로를 겪었던 집. 작업비에 울상을 짓던 고객은 '도와주세요'라고 말했지만 내가 비싼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는 사람을 도울 형편은 아니었다. 그 여운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상태로 도착한, 단지 내 환경이 특이한 조각들로 이루어진 아파트. 일단 차단기를 내려야 했지만 실리콘 작업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몇십 분을 기다려야 했다. 전체 인테리어를 진행 중인 현장은 이런 일이 종종 있다. 작업 시간을 정확히 예측해서 다음 작업자에게 자리를 비워준다는 건 불가능하다.


주 작업은 3구짜리 거실등 설치였다. 3구짜리 거실등은 상당히 무겁다. 남자 혼자서도 설치하기 버거울 만큼. 그리고 브래킷이 커서 수평을 잡고 앵커를 설치하는 과정이 꽤 까다롭기도 하다. 힘이 남아있을 때 먼저 해야 하는 작업이다. 몇십 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천장에서 나와있는 선이 복잡하다. 원래 두 가닥에서 최대 네 가닥이 나와있는 곳에서 여덟 가닥이 나와 있었다. 그런 구멍이 총 세 개. 선의 종류를 알아내는 데 만 해도 이십 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무슨 등이 있던 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상시로 전류를 공급해 주는 활선까지 있었다. 필요 없는 선들을 다 절연처리하고 세 가닥만 남겼다. 중성선, 그리고 스위치 선 두 개. 또 하나의 문제는 전선이 너무 굵다는 점이었다. 보통 조명용 전선은 1.5 스퀘어에서 2.5 스퀘어의 면적을 갖고 있다. 그런데 4 스퀘어의 전선이 달려 있었다. 나도 처음 만져보는 전선이었는데 잘 구부러지지도 않고 무엇보다 일반적인 LED등의 커넥터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아마 오래된 형광등의 커넥터에는 들어갔던 모양이다. 그래서 전선을 2.5 스퀘어 짜리로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 전기적으로 이상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체력은 급속하게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은 건 방등 세 개. 그중 하나는 전날 도배사가 달아 둔 상태였는데 불을 꺼도 미세한 잔광이 남아 있었다. 스위치를 보자 바로 이유가 보였다. 전자식 스위치. 형광등은 괜찮았겠지만 그보다 예민한 LED 등의 드라이버를 자극하기엔 충분한 양의 미세전류를 흘려보내는 시스템이다. 스위치를 아날로그로 교체하거나 잔광 콘덴서를 추가해야 했다. 내가 다시 방문하면 비용이 발생한다. 고객은 당황해서인지 스위치 교체도 등 교체 가격에 포함되지 않느냐는, 내가 당황할 만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직접 교체를 권유했다. 다행히 1구만 사용하면 되는 스위치였고 방법만 알면 나름 간단한 작업이었다. 자세히 설명하고 사진까지 보면서 이 색의 전선은 여기, 이 색의 전선은 여기 꽂으면 된다고 알려줬다. 나도 재방문을 하고 3만 원의 출장비에 작업비까지 받기에는 좀 미안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쉽게 단단해지지 않는다.


그날 작업을 모두 마쳤을 때 몸은 이미 바닥에 가까웠다. 오전 11시 반에 나와 저녁 6시 반에 귀가. 점심시간은 없었다. 일당으로 치면 30만 원짜리 작업.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한 가지를 또렷하게 체감했다. 이렇게 일해야 이 정도를 번다는 감각. 일의 강도와 수입이 그리는 그래프. 그 곡선의 기울기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수입은 더 이상 숫자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몸의 무게, 팔의 떨림, 늦게 찾아오는 피로의 형태로 함께 기록되기 시작했다. 그건 다소 새로운 감각이었다. 내가 이만큼 몸을 갈아 넣어야 이만큼이 손에 쥐어지는구나. 고객의 입장에 서서 보면 사실 선뜻 지출하기 쉬운 비용은 아니다. 하지만 내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노동의 강도에 비하면 약소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음이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노동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건 냉정함도 아니고 욕심도 아니다. 내가 살아가기 위한 통증의 최솟값. 그게 나의 노동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