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 출신 고객을 만난 날
설날 이후에 일이 하나 들어왔다. 딸 가족이 부모님의 집에 와서 보니 집이 너무 어두웠던 모양이다. 사위가 등 교체 과정을 담당했고 그 요청의 끝에서 내가 호출되었다.
어르신 부부가 사는 20년 된 아파트. 천장에는 세월을 고스란히 버틴 형광등이 달려 있었다. 빛은 약했고 색은 누렇게 지쳐 있었다. 할아버지는 변전소에서 정년을 마친 기술자 출신이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내가 하는 종류의 전기 작업에 대한 지식을 갖고 계신 것은 아니었지만 중간중간 이런저런 코치를 해주려 하셨다. 그중에는 맞는 말씀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섞여 있었다. 나는 긴장했다. 실수에 대한 긴장과는 결이 달랐다. 판단 하나하나가 조용히 검증당하는 위치에 놓였을 때 생기는 종류의 긴장이었다. 익숙하지만 언제나 피로를 동반하는 감각. 집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사위분도 그런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당연히 짜증이 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걸 드러내 보일 수는 없다. 그 감정을 유지해서도 안된다. 나는 맞장구를 쳐가면서 웃음으로 분위기를 풀어나가려 노력했다. 목을 꺾어 천장을 보며 손에는 무거운 등기구를 들고 해야 하는 감정 노동은 다소 색다른 느낌이었다.
거실 작업부터 시작했다. 유리 커버가 달린 2구짜리 형광등을 떼어내고 맞이한 천장은 낡아 있었다. 오래된 석고보드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반응했다. 공구가 닿을 때마다 조각과 가루가 비처럼 떨어졌다. 작업복 위로, 팔 위로, 얼굴 위로 석고 먼지가 쌓여 갔다. 바닥은 금세 지저분해졌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
‘이걸 보고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시면 어쩌지.’
천장이 약한 탓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생각은 자동처럼 떠오른다.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의 평가는 언제나 기술과 무관한 요소들과 뒤섞인다.
거실의 형광등을 탈거하고 새로운 3구짜리 등을 설치하는 작업은 아마도 내가 하는 일 중 가장 무거운 일일 것이다. 이 과정은 언제나 힘들다. 그걸 지켜보던 사람들이 도와주겠다고 나섰지만 나는 정중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도움이 싫어서가 아니다. 어디에 손을 얹고 어떤 순서로 하중을 풀고 어떤 균형으로 버틸지는 작업자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다. 아주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나는 혼자 작업을 마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고비를 받을 때 애매한 감정이 남는다.
이렇게 감정이 엇갈리고 움직임이 부산스러운 가운데 새 LED 등의 교체가 완료되었다. 스위치를 올리자 공간의 인상이 단번에 달라졌다. 밝아진 거실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어르신들을 보니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빛은 늘 드라마틱하다.
이렇게 첫 작업이 완료되었다.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았지만 정확히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작업 중에 시계를 거의 보지 않는다. 대신 나중에 작업 순서를 복기하며 대략의 시간을 가늠한다. 어느 시점부터 나는 밥솥의 증기 내뿜는 소리로 밥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았고, 주방에서 퍼져 나오는 반찬 냄새로 식사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것도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서두를 수는 없다. 전기는 급하게 다루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생각하면서 작업해야 한다. 마음은 조금 급해졌지만 손의 속도는 의식적으로 조절했다.
이어서 방등 세 개 설치. 유리 커버의 원형 형광등을 탈거할 때는 내가 먼저 도움을 요청했다. 지름이 640mm쯤 되는 원형의 커버는 한 손으로 제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위분이 도와주셨다. 그 이후에는 비교적 수월한 작업이었다. 사다리를 자주 오르내리고 공구를 가지러 오가는 일에 에너지 소모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공구집을 허리춤에 차지 않는다. 움직임이 적어 편한 대신 무게가 꽤 나가는 터라 전신에 힘이 들고 균형 잡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여러 번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지만 차라리 몸을 움직이는 쪽이 낫다. 물론 당장의 기분과 실제로 남는 피로의 양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마지막 작업은 스위치 교체였다. 우연히도 그 집의 배선은 전날 작업했던 집과 비슷했다. 4 스퀘어 전선, 동일한 전자식 스위치. 같은 시공팀이었을까. 시간대도 비슷한 20년 전. 그렇게 이전 작업자의 흔적을 잠시 헤아려 본다. 누렇게 변색된 스위치를 철거하고 하얀 새 제품을 달자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작은 변화였지만 공간의 표정이 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오후 1시 30분.
종종걸음으로 차단기를 올리고 테스트를 다 마친 뒤 서둘러 짐을 챙겼다.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긴장과 간섭 속에서도 무난하게 응대를 마쳤고, 마지막에는 농담까지 오가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형광등을 LED로 교체하는 작업은 대부분 결과가 분명하다. 밝기가 변하고 공간의 인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만족은 이상하게도 나에게도 전달된다. 빛은 고객의 집에서 켜지지만 기분은 작업자의 몸에 남는다.
그날은 조금 특별한 하루였다. 색다른 고객을 상대한 감정 노동자의 하루이기도 했고, 이틀 동안 50만 원을 번 기록을 세운 날이기도 했다. 나에게는 꽤 큰 소득이다. 목돈 통장을 건드리지 않은 채 생활비 통장 잔고로 월세를 냈다. 묘하게 단단한 만족감이 남았다.
집으로 돌아와 씻는 동안 얼굴과 눈 주변에 묻은 석고가루가 자극을 주었다. 따갑거나 가렵거나. 마스크와 고글을 써야 하는 작업이라는 걸 알면서도 번거롭다는 이유로 자주 외면해 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키가 크지 않다. 키 큰 작업자들보다 석고가루를 바로 아래에서 얼굴에 정면으로 맞는 비율이 높다. 보호 장비의 필요는 규정이 아니라 경험에서 또렷해진다. 씻고 밥을 먹은 뒤 나는 거의 즉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은 쉬는 날로 정해 두었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힘들었지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매일 이 정도만 일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