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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Aug 10. 2021

그래도 누군가를, 그럼에도 누군가를

오늘의 선곡: 토리 켈리, Dear No One

 시작해 봅시다. 밸런스 게임. 모태솔로 연인 대 연애 경험 100번 연인. 이성친구와 밤늦게까지 술 마시는 연인 대 술 없이 이성친구와 여행 가는 연인. 누구와 함께 있던 이런 주제가 대화 중 툭 튀어나오면 정말 큰일이라도 난 듯 열띤 토론이 시작되곤 한다. 그래도 모태솔로가 낫지 않느냐. 어떻게 이성친구와 여행을 가느냐 등등. 그 속에서 나는 오른쪽 귀로 나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담다가 결국 단어 몇 개가 왼쪽 귀로 듬성듬성 새어나가는 걸 막지 못한다.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고통받고 열변을 토하는가. 이래서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말이 유행인 거구나. 스불재, 스불재.. 되뇌다 결국 "그냥 안 만나면 안 돼?"하고 재를 팍 뿌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평생 머리 안 감는 연인과 평생 이 안 닦는 연인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냐고! 


 혼자가 좋다. 상대방이 머리를 매일 감고 이를 매일 닦는 것과는 상관없이. 연애는 사실 시작부터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은 그냥 대학생이 됐으니까 의무감으로. 결과는 역시 처참했다. 다들 연애가 좋다는데 왜 나는 모르겠지? 내가 이상한 걸까? 그냥 이상한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았을 걸. 다시 한번 해본 연애는 또 좋지 않은 기억만 남겨 줬다.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자면 랩탑 배터리가 모자라고 분노에 가득 차 계속 타자를 두드리다 그렇게 돌이 되어 죽은 한 여성의 이야기가 구전처럼 내려와 어쩌고저쩌고. 그 후 굳이 누군가를 만나려 하지 않고 시간이라는 강물에 홀로 떠있는 보노보노처럼 몇 년을 살아왔다. 혼자서 보는 하늘과 혼자서 느끼는 바람과 물살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좋았다. 또 가끔은 내 곁에 포로리와 너부리도 있었으니까. 이게 나에게 딱 맞는 삶 같았다. 소소하게 외롭고 구석구석 행복한. 그렇게 내 삶에서 연애라는 단어는 슈퍼 빌런 타노스가 손가락 튕기듯 흙처럼 사라졌다. 


 결국 어벤저스는 타노스를 무찌르고 흙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을 다시 빚어내는(!) 결과를 거두지 않았나. 갑자기 연애라는 단어가 살아나 스멀스멀 내 뇌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슥슥 내리다가 보게 된 한 영상 속 미남 때문에. 그 미남은 자신의 아내를 떠올리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아내와 통화할 땐 목소리에 행복이 진득하게 묻다 못해 뚝뚝 떨어졌다. 이런 사람이라면 평생 살아도 좋겠다는 낯선 생각이 훅 다가왔다. 물론 그 생각의 핵심은 연애나 결혼이 아닌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잠시 그려봤다. 나밖에 모르는 잘생긴 바보. 나만 떠올리면 배시시 웃는 잘생긴 사람.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 눈에서 사카린 가득 부은 브라우니처럼 달콤함이 뚝뚝 떨어지는 잘생긴 사람. 그래, 솔직하게 덕후라면 다 아는 유사연애의 익숙한 맛이 났다. 음, 달다. 아는 맛. 그래서 더 그 상상이 꽤 부럽고 즐거웠다. 


 사실 내가 연애나 결혼에 시큰둥한 이유는 또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 이 사람과 함께 하면 나는 안전할 수 있을까. 내 안위에 해가 되지 않는 사람인가. 아주 슬프게도 기본적인 이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선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고, 나는 꼭 그 투자에 성공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눈만 뜨면 마주치는 사건사고는 나의 삶에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감각을 깨워낸다. 자연스러운 보호본능인 걸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더 크지만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 또한 없기에 그저 나의 시간과, 비용과, 나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근사한 외모의 미남만 보면 살림을 기꺼이 차릴 상상을 한다. 물론 미남이 돈도 벌어오고 집안일도 해야겠지만. 이건 혹시 결혼을 부추기려는 세상의 거대한 음모? 혹은 마음속에 있던 로맨스에 대한 욕망을 내가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사람은 정말 태어나기를 반쪽으로 태어나서일까? 아니, 굳이 그 마음을 깊이 파고들어 가 봐야 할까? 이 자연스러운 감정에 의심을 품는다는 사실이 꽤 슬프다. 당연한 걸 바라고 당연한 걸 바라기에 괴롭다는 사실이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모순적이어도 내 마음마저도 나의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어느 마음 한쪽에는 꼭 맞는 나의 소울메이트가 있길. 없어도 상관없지만, 있으면 좋겠다. 


 내 음악 어플 보관함에 담겨 있는 약 1,800곡 중 인생 곡을 뽑으라고 하면 꼭 들어가는 곡이 하나 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토리 켈리(Tori Kelly)의 '디어 노 원(Dear No One).' 개인적으로 한 번도 만나본 적 없고 앞으로도 만날 기회는 절대로 없을 그는 이미 나와 만나 깊은 이야기를 해본 것 같다. 가사가 딱 내 이야기 같아서. "난 독립적인 게 좋아. 아무도 나에게 뭘 하라고 말하지 않지.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싶지도 않아. 그래도 가끔은 내 손을 잡아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꼭 사람과 직접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고, 안아줄 때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활자로 따라가면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펼쳐진 책 속에서, 누군가는 3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만 세계를 들려주는 노래 속에서 감각을 찾는다. 나는 캘리의 노래에서 찾았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는 의심.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이러면 이상한 거잖아? 혼자가 아니란 사실은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이다. 누군가의 "나도 그런데?"로 말끔하게 해결이 되곤 하는. 


 그래서 켈리는 노래했다. 미래에 있을 그 연인을 찾는 일은 이제 그만뒀다고. 대신 딱 맞는 타이밍이 온다면 그가 자기 옆에 있을 거라고. 그래, 혼란스러운 마음은 살짝 뒤로 미뤄두고 기다려 볼까 한다. 켈리에게 '노원(No One)'이 있으니 음.. 나의 그를 대충 김노원이라 부르자. 저기요, 노원 씨.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아도 좋고 (너무 무례한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아도 좋지만 만약에 우리가 만난다면, 전 정말 잘해줄 수 있거든요. 전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니까 기다릴게요. 결국 그게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두 추가)로 끝난다 하더라도. 당신은 꼭 좋은 사람이어야 해요. 그럼 안녕. 




https://youtu.be/cTEz4Oe3p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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