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톨게이트비 무료, 지나가다 든 생각

톨게이트 수납원인 장모님의 인생

by 하크니스

설 연휴에 톨게이트를 꽤 많이 지나갔다. 그 톨게이트는 장모님이 수납원으로 일하시는 곳이었다. 설 연휴에 무료로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문득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나는 평소에 톨게이트를 지날 때 하이패스로 지나간다. 그런데 장모님이 일하실 때는 혹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현금 계산을 하는 곳으로 지나간다. 장모님을 톨게이트 수납원으로 만났던 적은 딱 한 번 있다. 교회에서 수련회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었고 현금 수납을 하는데 장모님이 계신것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어머님!!!!'하고 외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팔을 뻗어 악수를 했다. 그때 당시는 아직 결혼하기 전이어서, 장모님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어머님이라고 외쳤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그렇게 신기하고 반가운 일인 줄 몰랐다. 그때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인지, 혹시 장모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에 톨게이트를 지날 때면 불편해도 현금계산을 하는 곳으로 간다. 그래서 차에 항상 동전도 준비해놓는다. 내 차에 있는 동전은 장모님을 톨게이트에서 만나고 싶은 내 바램이다. 그렇게 내 동전은 의미를 가진다.




추석과 설 명절 때는 톨게이트비가 무료다. 내가 알기론 2004년 부터 명절 기간 동안 고속도로 이용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시작했다. 이번 설 명절때는 1월 27일 부터 1월 30일까지 시행했다. 아는 고객사 사장님과 설 명절 전 식사를 했는데, 톨게이트비 무료 정책에 대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셨다. 1월 27일에 톨게이트비가 무료라면, 26일 밤 12시부터 무료가 된다. 그래서 톨게이트 근처에 주차해놓고 쉬고 있다가 12시가 넘어가면 약 12시 5분 정도부터 운전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길 들으면서 속으로는 '톨비가 뭐 얼마나 한다고?'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주차비를 아까워하는 것처럼 톨게이트비가 아까운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해는 됐다. 나도 이번에 많이 이동했으니, 몇 천원이라도 세이브 했으니 감사한 일이다.




설 명절에 수납원은 쉴까? 쉬지 않는다. 장모님은 이번 연휴 동안 하루를 쉬고 나머지는 다 출근을 하셨다. 톨비가 무료가 됐기 때문에 현금 수납은 안해도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창문은 닫아놓고 지나가는 자동차를 카운팅 한다고 한다. 아마 명절 차량 이동량 통계를 작성해야 해서 그런것인지, 그냥 앉아서 놀라고 할 수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심심하셔서 우리한테 전화를 하실 때도 있다. 명절에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서 놀고 있지만, 톨게이트 수납박스에 앉아서 심심해하는 장모님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설 명절에 같이 만나서 손주도 보고 음식도 먹고 함께 영화도 보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이번에 하루 쉬실 때 찾아가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함께 히든 페이스를 티비로 시청했다. 작년 추석엔 서울의 봄을 봤다. 수납원으로 일하시기 때문에 하루나 이틀밖에 시간이 없고 우리는 장모님댁에서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는 게 명절 문화로 자리잡았다.


예전엔 명절에 근무를 할 땐 한복을 입어야 했다고 한다. 한복을 입고 근무하려니 얼마나 불편하고 힘드셨을까. 물론 지나가면서 보는 사람들은 명절 느낌도 나고, 이쁘다고 하기도 했지만 8시간씩 한복을 입고 앉아 계시는 분들은 너무 힘드셨을 것 같다. 지금은 한복을 입고 출근하진 않는다고 한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장모님은 일을 할 때 항상 잘 웃으신다. 웃으면 복이온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장모님은 거의 매일 무엇인가를 받아오셨다고 한다. 사탕, 먹을 것, 각종 선물 등. 난 그 말을 듣고 되게 놀랐다. 고속도로에서 이동하기 바쁜 사람들이 수납원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장모님이 잘 웃으셨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마음씨가 그만큼 따뜻했던 걸까? 장모님이 받아온 선물들을 촬영해서, 스토리를 입혀 책으로 출판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잊지 않고 그 추억들을 모아놨으면 참 재미있었을텐데.




톨게이트 수납원으로 있으면 유명한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중 기억나는 사람은 '박수홍'이었다. 당시 박수홍은 결혼 전이었다. 박수홍이 톨게이트를 지나가는데 옆에 여자가 앉아있었다. 박수홍은 '저 결혼해요'라고 했다고 한다. 장모님은 너무 놀랐고, 축하한다며 톨비는 내지 말고 그냥 가라고 했다. (장모님은 종종 유명한 사람을 만나면 대신 톨비를 내주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결혼이 아니었고 남남북녀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상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지금 박수홍은 결혼해서 딸을 낳고 잘 살고 있다. 이 밖에도 많은 사람을 만나셨고 나에게 이야길 해주었지만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내 장모님은 이혼 후 어린 두 딸을 홀로 톨게이트 수납원으로 번 돈으로 키워내셨다. 톨게이트에 인생이 있고 추억이 있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내기 아까운 톨비를 내는 곳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장모님에겐 톨게이트가 있어 두 딸을 키울 수 있었다. 한 명의 딸은 싱가포르인과 결혼해서 싱가폴에서 살고 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잘 살고 있다. 다른 한 명의 딸은 나와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낳고 살고 있다. 든든한 가족들이 생겼고 손주들이 할머니에게 재롱을 피운다. 포기하지 않고 톨게이트 수납원으로 끝까지 일해 지금의 우리 가족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모님께 참 감사하다.


이번 설날 우리 아들 세뱃돈 봉투에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적으셨다. 나는 속으로 '살아계셔서 감사하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무뚝뚝한 사위라 말로 전하진 못했지만 이번 설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정말 장모님의 인생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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