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임상 6년 차 간호사입니다. 지금 현재 저는 탈임상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것저것 서칭 하다가 선생님 글을 보게 되었네요. 생각의 흐름이 단단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이팅입니다.
짧은 메일에서 탈임상 6년 차, 그리고 탈임상 교육이라는 단어가 눈에 박혔습니다. 가끔 제 글을 읽고 메일을 보내시는 분들이 계시긴 하지만 탈임상 선배에게 연락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어요. 이 분은 어떤 일을 하시는 걸까요? 탈임상 교육이 뭘까요? 짧은 메일에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답장을 썼습니다. 선생님이 일하고 계신 업계가 어디인지, 탈임상 교육은 무엇인지. 그리고,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도 교육을 한 번 들어볼 수 있을지도요. 그리고 드디어 지난 토요일, 남보라 선생님을 만나 뵙고 선생님의 탈임상 교육을 청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탈임상 교육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탈임상 교육은 크게 4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5시간 동안 진행됩니다. 제가 참석했던 날은 총 10분이 참여해 주셨어요. 교육은 각 섹션별로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1. 남보라 선생님의 탈임상 과정 및 직장 이력 소개
남보라 선생님의 간호대 졸업 후 직장 이력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남보라 선생님은 종합병원에서 1년 반, 로컬 외과에서 1년 반, 대학병원에서 2년, 모두 합해 5년 동안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선생님은 일반 회사로의 이직은 오랫동안 꿈꿔왔지만 그 과정은 좀처럼 쉽지 않았죠. 마지막 병원을 퇴사하고 몇 개월 후, 우여곡절 끝에 한 의료기기 회사에 취업하며 탈임상의 물꼬를 트게 됩니다. 선생님은 이후 두 번의 이직을 거쳤고, 지금은 세 번째 회사에서 임상학술팀 과장으로 근무 중이세요.
2. 병원 외 간호사가 이직할 만한 직종 및 직무 소개
간호사 면허와 경력을 가지고 도전해 볼 만한 직종을 폭넓게 소개합니다. 보험심사 간호사, 제약 회사, 의료기기 회사, CRC/CRA, 산업체 간호사, 국제 센터 간호사, 교육/방문 간호사, 간호 공무원, 공단(심평원, 건보 등) 등등. 간호사로서 도전해 볼 만한 직종은 한 번씩 훑습니다. 한 가지 직종을 소개할 때다 각 직업의 솔직한 장, 단점도 함께 짚고 넘어갑니다.
3. 이직 준비에 필요한 스펙 및 스펙 준비 방법
병원이 아닌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스펙이 필요한지 소개합니다. 남보라 선생님께서는 계속해서 "우선 텅 빈 이력서를 채워야 한다!"라고 강조하는데 그렇게 공감될 수가 없어요. 처음 이력서 쓸 때, 간호사 면허증을 적고 나니 더 이상 적을 것이 없어 좌절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4. 공고 찾기, 이력서 작성하기, 면접 보기
지원할 만한 공고는 어디서 찾는지, 이력서는 어떤 식으로 써야 어필할 수 있는지, 심지어 면접 복장까지(!) 추천합니다. 병원 말고는 구직 경험이 없을 간호사를 위한 구체적인 꿀팁이 많았습니다. 심지어채용공고 서치 방법까지 알려주시다니, 이런 취업 특강이 어디 있나요.(동시에 간호사들은 정말 병원 밖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흑흑.)
베스트 유입 키워드: '간호사 말고'
브런치는 사람들이 어떤 키워드로 내 글을 읽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입 키워드'라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키워드로 내 글을 만나게 되는 걸까요? 놀랍게도 제 글의 베스트 유입 키워드는 '간호사 말고'입니다.다른 키워드로는 '간호사 다른 길', '간호사 진로' 등이 있지요. 이 말인즉슨, (제가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간호사들이 "아무거나 다 할 수 있어. 간호사 말고!"라고 외치고 있다는 뜻이겠죠.
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혼자라고 느꼈습니다. 간호대 나와서 삽질하는 사람은 전 우주에 나 혼자인 것 같았어요. 제 주변 간호사들은 병원 때려치우겠다는 말은 해도 병원을 결국 그만두지 못하거나, 병원을 나오더라도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거든요. 간호와 멀리멀리 떨어진 다른 일을 하는 간호사 선배는 주변을 아무리 수소문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어지러운 생각들을 문자로 구체화하고, 문장과 문단으로 묶어 정리하니 마음을 잡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저의 흔적을 남겨놓으면 혹시 비슷한 누군가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조금 있었고요.
그렇게 끄적끄적 글을 적다, 어느 날 남보라 선생님의 메일을 받게 된 거죠. 역시, 우주가 이렇게 넓은데 간호대 나와서 삽질하는 사람이 나 혼자 뿐일 리가 없습니다.
탈임상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탈임상 교육이 뭘까, 궁금해 참석했습니다만, 결국 남은 것은각종 꿀팁보다 선생님의 진심이었어요.남보라 선생님은 본인의 교육이 '현실 파악을 위한 독설 쇼'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장은 아프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저는 그 속에서 간호사 후배들이 병원 밖에서 자리를 잡길 바라는 선생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생각해보니, 제 글을 보시고 응원의 메일을 보내신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저는 간호사들이 다양한 분야로 많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목숨에 대한 긴장감을 살짝 내려두고 다양한 분야에서 본인의 숨겨진 적성을 찾아보시는 걸 항상 응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탈임상을 진지하고 고려하고 계신 선생님들께 남보라 선생님의 탈임상 교육을 추천합니다. 교육도 좋지만, 조언을 얻을 만한 든든한 탈간호 멘토를 만들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저는 어렵게 만난 탈간호 선배를 꼭 잡고 놓지 않을거에요.)
저는 언젠가 병원을 나온 간호사들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있어요. 브런치를 매개로 이렇게 인연을 맺고 지평을 넓혀나가다 보면 머지않아 가능 할 수도 있겠죠? 남보라 선생님이 하셨던 말처럼, 간호사가 병원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병원 밖에서도 간호사 선 후배가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