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 E, 말레이시아 콜센터
말레이시아.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는지.
나는 말레이시아 하면 에어아시아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말레이시아는 특히 최근에 학부모들 사이에서 장, 단기 영어 캠프의 성지로,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에어아시아로 급부상한, 동남아에서 한 마디로 잘 나가는 나라다. 그래도 아직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에게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어딘가에 있는 나라, 정도가 첫인상일 듯하다. 조금 더 알고 있다면 영어가 공용어처럼 쓰인다는 것, 국교가 이슬람교라는 것 정도?
나는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환승만 할 줄 알았지, 말레이시아가 이렇게 핫한 나라인지 몰랐다. 말레이시아는 내게도 낯선 나라였기 때문에 그곳에 내가 벌어먹고 살 만한 취직자리가 있을 것이란 생각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한창 해외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건너 건너 말레이시아에서 일하고 계시는 현직자 분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말레이시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로 정기적으로 말레이시아 구인 사이트를 들락거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콜센터에서 한국어 구사자를 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레이시아 콜센터에서 한국인을 이렇게 애타게 구하고 있다니. 우선 반갑긴 한데... 대체 왜?
그렇게 반신 반의 하는 마음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던 말레이시아 콜센터 직무는 생각보다 꽤 괜찮은 해외취업 일자리였다. 하지만 그 조건이나 기회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지라, 개인적인 의견을 바탕으로 말레이시아 콜센터 취업에 대한 장, 단점에 대해 정리해 본다.
하나, 한국어만 할 수 있으면 취직을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유수한 글로벌 기업의 콜센터가 집중 포진되어 있다. 값싼 인건비와 임대료 때문이다. 물론 영어권 고객도 응대하지만, 대부분의 말레이시아 콜센터는 아시아 지역 관리의 거점으로 아시아 시장 고객 관리를 주로 맡아서 하고 있다. 물론 한국도 아시아 시장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한국 고객을 응대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네이티브 한국어 실력이 갑자기 스펙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한국인이 이런 콜센터에 입사하게 되면 한국 시장 담당자로 배치되어, 한국 고객들을 응대하게 된다. 업무적으로 영어가 필요하지 않기에, 상사나 동료들과 필수적인 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기본적인 영어만 된다면 일자리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이다. 보통 콜센터 인력을 전문적으로 뽑는 헤드헌팅 회사에 이력서를 내면 헤드헌터와 전화 면접 한 번, 그리고 현지 회사 면접관과 화상 영어 면접을 한 번 본다. 하지만 가끔은 이마저도 생략되기도 하고, 현지와의 화상 면접 때에도 헤드헌터가 같이 참여하여 통역을 도와준다고도 하니, 진입장벽이 얼마나 낮은 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또한, 이 모든 프로세스가 원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직자가 리스크를 안고 현지로 넘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은 큰 장점이다.
둘,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외에도 중국계, 인도계 등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살아가는 다인종 국가다. 다인종 국가답게 말레이어 외에도 영어, 중국어 사용 인구가 많아 다양한 문화는 물론, 언어를 배우는데 있어서도 좋은 환경이다. 특히 동남아 국가 중 싱가포르 외 거의 유일하게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초,중학생 영어 캠프의 성지가 되기도 했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일하고, 영어로 일하고 싶어 해외 취업을 꿈꾸고 있던 나로서는 다문화, 영어권 국가인 말레이시아가 굉장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 없었다.
셋, 말레이시아 물가에 비해 높은 급여, 한국보다 훨씬 더 좋은 생활수준
나도 "그래서 얼마 받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한국인이 신입으로 말레이시아 콜센터에 입사하면 보통 20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별로 많지 않다고? 대학을 졸업한 말레이인의 평균 월급이 70만 원 정도이다. 한국에서는 널리고 널린 한국어 구사 능력이 말레이시아에서는 무려 월급을 세 배나 높이 쳐주는 귀한 스킬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200만 원과 말레이시아의 200만 원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올해 아세안 해외취업 박람회에 참여하면서 말레이시아 취업 설명회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말레이시아 취업 시장이나 전반적인 환경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서도, 강연자 분이 말레이시아의 생활환경에 대해 설명하실 때 보여주셨던 사진 몇 장은 예상치 못하게 찌르르, 내 심금을 울렸다. 그 사진들은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위 사진들은 Service Apartment, 혹은 Service Residences라고 불리는 주거형태로, 아파트 단지에 입주민들을 위한 각종 부대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공원, 수영장, 요가센터, 헬스장은 기본이고, 좋은 곳은 스쿼시 코트,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비즈니스 미팅룸 등 더 다양한 시설을 제공한다. 지역에 따라, 방 개수나 옵션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쿠알라룸푸르의 침실 1개짜리 서비스 레지던스의 월 렌트비는 대략 40만 원 전후, 보증금으로는 보통 월세의 2,3배를 지불한다. 서울의 500/40의 원룸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감동해서 눈물이 나오는 생활환경이다.
물론 이렇게 좋은 아파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대시설이 없는 플랫을 구한다면 렌트비는 훨씬 더 저렴해지며, 하우스메이트를 구해 집세를 절감하는 방법도 있다.
※ 위 부동산 정보들에 대한 근거는 2018년 아세안 취업박람회 말레이시아 강연 및 말레이시아 부동산 중개 사이트 https://www.iproperty.com.my/ 의 정보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하나, 한정된 직무
말레이시아 취직이 쉽다는 것은 전적으로 콜센터, 즉 고객 관리직에 한정되는 이야기다. "한국어" 특기를 살려 고객관리 외 다른 직무로 말레이시아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는 참 어렵다. 가끔 그럴듯한 일자리를 찾을라치면, 그분들은 영어 혹은 말레이시아어 능통은 기본, 1년 이상의 관련 경력이나 제2 외국어 등의 플러스알파를 요구했다.(내가 이 정도 능력이 있었으면 이미 취업을 해도 지지난주에 했겠다.) 나름 그럴듯한 직무에, 특별한 스펙이나 경력 요구사항이 없다? 그렇다면 급여를 눈여겨보자. 아마 급여가 현지 신입사원이 받는 수준(한화 70만 원 대 전후) 일 것이다.(이 돈 받고 일할 거라면 그냥 한국에서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하자.)
둘, 커리어 패스에 대한 고민
말레이시아에서 콜센터 업무로 커리어를 시작한다면 그다음 커리어 스텝은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고객관리와 응대는 분명 모든 비즈니스의 기본이자 시작이지만, 스스로 명확한 커리어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면 흔히 말하는 물 경력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나는 특히 이 문제에 자신이 없었다. 콜센터 직무는 특히 내가 가지고 있는 간호, 의료계 커리어와 무관했고, 앞으로도 엮을 수 있는 여지가 적어 보였다.
우선 일을 시작한 다음, 부딪히며 경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커리어 전환을 계획하는 중요한 이 시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직무에 긴 시간을 투자하기에는 20대 후반의 1년, 1년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졌다. 나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커리어를 만들어나갈 초석이었지, 외국에 나가고, 돈을 버는 것은 그다음 문제였다.
셋, 해외 취업의 메리트, 과연?
해외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커리어를 더 높이 사는 이유는 영어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협업해 일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타 문화권에서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일했던 경험과 노하우는 단순 영어 능력이나 사교성과는 달리, 회사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경험적으로만 체득할 수 있는 자산이다.
회사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콜센터에 입사하게 되면 고객을 응대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게 된다. 자연히 한국 시장 고객관리 담당은 직장에서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고, 동료들과 협업을 하는 일 또한 드물다. 업무 상 영어가 필요하지 않기에 일자리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업무 경험의 한계도 명확한 셈이다.(물론 영어권 고객을 동시에 커버하는 경우는 예외가 되겠지만, 애초에 네이티브에 준하는 영어실력이 있어야 해당되는 이야기다.)
말레이시아 플랜은 다른 플랜들과는 다르게, 실제 적극적인 구직 활동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콜센터 취업에 대해 참고할 만한 정보나 후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던지라, 내가 아는 선에서 해외취업 박람회 및 현직자의 의견 등을 간추려 장, 단점을 정리해 보았다. 장점은 객관적인 편이지만 단점은 다소 주관적이니 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여 걸러들으시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내게 말레이시아는 도피처의 느낌이 컸다. 진입 장벽이 낮으니, 우선 1년 정도 말레이시아 콜센터에서 근무하면서 현지에서 영어공부를 병행해 후에 말레이시아 혹은 싱가포르로의 이직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우선순위는 즐겁게,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었기에, 단순히 다음 스텝을 위한 플랜을 세우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버티며 일하는 데에는 단단히 이골에 난 상태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도저히 할 수가 없는 멘탈 개복치 상태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레이시아 콜센터가 꽤 괜찮은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워킹홀리데이는 무섭고, 장기적인 외국 경험은 하고 싶은 분들께 괜찮은 옵션인 것 같다. 돈을 벌고 안정적인 생활 환경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 게다가 주변 동남아 국가도 언제든지 쉽게 여행할 수 있으니 어떤 의미로는 진정한 "워킹 홀리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서울에 사는 동안은 수영장, 공원, 미팅룸, 헬스장 등의 부대시설이 딸려있는 레지던스에 살아 볼 날이 너무나 요원하지 않은가. 말레이시아에 가지 않기로 하긴 했지만, 쿠알라룸푸르의 아름다운 레지던스 사진들은 요즘도 자기 전에 가끔씩 떠오른다.
말레이시아 콜센터 취업, 이런 분께 추천한다.
무작정 워킹홀리데이는 불안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타 문화권을 경험해보고 싶은 분들
자신 있는 언어는 한국어 뿐이지만 죽기전에 해외에서 한 번쯤 일해보고 싶은 분들
고객응대, CS 쪽의 커리어를 쌓고 싶거나 장기적인 커리어 플랜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
동남아에 장기로 머물며, 구석구석 여행하고 싶은 분들 (심지어 말레이시아는 에어아시아의 나라!)
인생 한 번쯤 수영장, 헬스장, 테니스장, 공원, 24시간 경비 +a가 딸린 럭셔리 레지던스에서 사는 것이 버킷리스트인 분들
말레이시아 콜센터 취업, 이런 분께 비추한다.
CS, 고객응대 직무에 맞지 않는 분들
장기적인 커리어 플랜 없이, 단순 해외 취업만이 목표이신 분들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가 늘 것을 기대하는 분들
* 인스타그램 계정 @writer.mo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