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 A,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다소 뜬금없는 진로고민의 시작

by 글쓰는 권모니



역시나, 처음부터 뜬금없는 플랜이다. 내 의식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한 부연 설명은 다음과 같다.



퇴사 직전, 당시 나는 병원에 지칠 대로 지친 데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겹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어딘가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특히 병원 입사 전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한 달 동안 생활했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리웠다. 일하면서도 틈틈이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구하는 커뮤니티를 눈팅할 정도였다. 그러다 퇴사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들락거리던 커뮤니티에서 M게스트하우스에서 매니저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나는 이게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M게스트하우스는 스텝일을 구하던 시절부터 눈여겨보던 곳이었다. 숙식 제공은 기본이고, 운영한 지 꽤 되어 나름의 체계도 갖추어져 있었으며 직원 대우도 괜찮다고 그 바닥에선 소문이 나 있었다. 게다가 외국인 손님도 꽤 있는 게스트하우스였기에 제주도에서 영어공부도 하면서 쉬엄쉬엄 다음 커리어를 모색해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가 그리울 때마다 닳도록 꺼내봤던 풍경.


나는 공고를 보자마자 아주 공들여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냈다. 병원 자기소개서를 쓸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간절함이 솟아났다. 내가 얼마나 이 게스트하우스에 보탬이 될지, 내가 얼마나 여행을 좋아하고 친화력 만점인 사람인지 구구절절 적었고, 마지막엔 나의 유쾌함을 보여줄 수 있도록 엄선한 여행 사진까지 첨부했다. 다행히 나의 간절함을 읽으신 사장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면접을 볼 수 있었으나 며칠 뒤 도착한 결과는 다음 기회에. 결과를 듣고 실망감이 컸다. 아마 처음으로 간절히 입사하고 싶었던 곳이었기 때문 아닐까.


그 이후에도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구인 글을 찾아보았으나 지원했던 곳이 워낙 가고 싶었던 곳이어서인지 다른 곳은 별로 끌리지가 않았다. 실제로 그만큼 조건이 좋은 곳이 없기도 했다. 그렇게 제주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공고를 찾아 헤매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특정 게스트하우스의 매니저였지, 제주도로 내려가 한량 생활하기는 아니었다. 이미 주변에 퇴사하고 제주도 내려간다며 떠벌려 놓은 것도 있기 때문에 계획을 수정하기 멋쩍긴 했지만, 뭐, 꼭 제주도에 가야 했던 건 아니잖아? 어차피 합격이라도 했다면 퇴사 다음날 바로 제주도에 내려가 정신없이 인수인계부터 받아야 했던 터, 이렇게 된 김에 길게 여행이나 다녀와서 다시 생각해보자. 싶었다.


그리하여 플랜 A는 이렇게 파기되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병원에 지칠 대로 지쳐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나머지 조급하게 노선을 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병원에 있었기에 시야가 좁기도 했다. 이후 장기적인 커리어를 고민하면서 이 플랜은 완전히 접게 되는데, 가끔 이때 제주도로 내려갔으면 어땠을까 궁금하긴 하다. 단조로운 생활에 현타를 맞고 다시 처음부터 고민을 시작했을 수도 있었겠고, 사람 좋아하고 여행 좋아하니 천직이라 생각하고 숙박업에 눌러앉았을 수도 있겠다. 지금은 제주도에 내려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거절은 아팠으나, 덕분에 플랜 B, C, D를 도모해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마케터가 된 간호사 ; 전 간호사, 현 마케터의 두 번째 신입 생활

병원 밖으로 나온 간호사 ; 탈간호 후 격한 방황기


* 인스타그램 계정 @writer.m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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