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문

절벽

by 사람

나는 그 아이를 보기 위해 절벽을 향해 뒤돌아서 걸어야만 했다 절벽에서 능청스럽게 아래를 바라보다 죽었다는 어느 일개의 비애를 생각하며 나의 수챗구멍 안에는 지금까지도 어물쩡하게 살아있는 나의 일대기에 눈보라가 치고 있다


날 기억하지 않아도 돼 그 말을 듣고도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까 의아했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괴로운 것들로부터 성실해지기 싫었던 건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 죽지 못해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여기라는 절벽에서 그 아이를 생각한다


그 아이의 가족을 생각한다 그 아이의 하얀 강아지를 생각한다 그러다 그 아이가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그 아이만의 슬픔을 생각한다 그 슬픔은 어딘가에 분명 존재했고 단숨에 나는 거짓말처럼 살아있는 날들이 징그러워졌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 아이의 탈선에 가담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변질된 사랑에 치우쳐 있었고 그것이 당연히 우리들의 몫인 양 그 아이를 구속했다 당연하다는 말을 싫어하는 내가 당연하다는 말을 꺼내놓을 만큼 정말이지 그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이미 그 아이의 모든 미움을 샀다


내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걸 왜 이 절벽에 와서야 알았을까 한때 파내는 우물 속의 물만으로도 주위 세상을 다 적시고 하늘과 땅도 다 채우고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던 나는 이 절벽 끝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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