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과 비약: 빛의 향연】
옛부터 의제 허백련과 소치 허련을 맥으로 한 예술인의 산실, 예향으로 이름 높은 고장에 의향이란 진입장벽을 틀 수밖에 없는 기구한 성춘향의 광주다. 이 빠진 하트의 역설(해학과 익살)로 깨는 것이 정의라는 전통에 반기를 든 반어로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였다. 노파심에 자유보다는 자율을 권하시기도 하셨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적힌 낙서는 세대 간의 격차를 누그러뜨리는 위안이기도 하였다.
스텐실의 오류를 미적 감각의 극치인 양 왜곡한 세력은 깨진 타일에 누명을 씌워 알렉산더 후손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물귀신 작전에 동시 자살 함정에서 위계에 의한 살인이란 죄명을 마련하였고, 욕보시라는 욕바라지가 옥바라지로 퇴색되었다. 뚱딴지와 아닌 밤 홍두깨가 본 김처선은 김장철 귀가할 수 없는 고역과 같았고, 네시 귀가가 위트를 담아 전해졌다. 육시랄은 6시 귀가로 고단함을 표한 모호한 괴팍함이었다.
김장의 어부지리는 품앗이의 정갈함으로 피어난 맛갈이고, 김치축제는 어드메 코로나-19로 묻히고 말았다. 초겨울 동경에 어린 지표류(푸른 돌꽃)는 마음 닦는 유기그릇에 담긴 기구한 한이고, 맞이해야 할 업의 순환이다. 제사의 맥이 어머니들에게는 힘든 고역이며, 마음 수련의 명경지수였다.
이른 주먹셈에 요절하는 오리걸음(경주의 성급한 처세)은 뒤뚱거리는 공옥진 여사의 바보춤이었고, 죽쓴이가 보여준 김치의 맥은 아린 속을 달래는 막걸리의 단짝이셨단다. 해질녘 해오라기(노고지리) 웃음을 닮은 웃음소리에 구름 사이로 내비친 햇살은 광주리에 연시와 같이 달보름했다신다. 의향이 깃든 효심에 역사의 기구한 틀을 벗어나려, 한의학의 태고적 숨결로 다가간다.
사단(인, 의, 예, 지)과 연관된 각 구의 명칭은 북•인구, 남•의구(효구, 한의구), 서•예구, 동•지구로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인 사신도의 틀을 비껴갔다. 북인의 실학정신과, 한의학의 상징성, 서예에 깃든 유림의 풍모, 동짓날의 가이야에 광산구의 무등구로 탈바뀜은 지역민의 혜안과 지혜셨다. 나주, 화순, 담양의 삼계가 어우러진 빛줄기(서화담-나•화•담과 황진이)는 주변을 추스르고 확장과 번영 속에 뻗어나간다. 아쉬움에 서린 중원은 원구로 농사와 기후를 걱정하며 피어낸 중심지의 위상을 갖추어나간다.
역사와 야사를 아우르는 통사의 절간이 무지렁이와 막행이를 돌보며, 욕쟁이 할머니의 훈계(반야심경, 신묘장구대다라니경)로 민족의 얼과 혼을 일깨우신다. 효는 충의 근본(충장로), 열 가지 경사가 지줄대는 고경명의 얼(금남로•경열로)인 빛과 열사의 혼(사막의 와디)의 그림자로 차조동시의 맥이 드리웠다. 연수기의 발명으로 거품목욕이 불필요해 욕조와 샤워부스의 엇갈린 시대유감에서, 선생님들의 연못에서의 합창(슬피 우는 빗소리, 참빛에서 빚어진 참빗: 부인할 수 없는 구림의 명품)으로 청개구리의 누위침이 가관이다.
북인과 남인의 충돌 속 태극의 화엄(공원에 핀 대추나무 위 연), 경산과 청도의 우중함(슬로우 시티는 뜸붕 위의 떼까우)은 동아의 어리석은 왜곡을 질타하며, 상고대가 아련한 무등이 스승을 자초한다. 무극수의 광명무극으로 무미건조에 드리운 오류를 무구정광이라는 송광사의 감로수로 진맥에 처방전을 내놓았다. 좌우로 반동을 연상시키는 군인들의 무도는 회중시계에 맞춰진 타이밍으로 대상과 청구의 맥인 큰 산업의 일꾼과 푸른 거북이의 지속성인 꾸준함을 권고하신다. 낙방과 향방의 저울 속 이면은 장원급제로 미국에서의 녹읍에 피어난 지고지순의 풍모를 지닌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12증 12포로 호흡하는 태양계에서 일정한 수렴점으로 깃들어 최적화 변명을 다그치며, 문제의 맥을 짚는다. 홍진경은 고령토로 염색한 양피지에 쌓인 알렉산더 대왕 후손들이 가져온 코란이었다. 헬레리즘 문화는 대륙의 문화를 융합하여, 이룩한 인류의 시련(흑사병 창궐) 속 지혜의 정수였다. 광주리에 드리운 빛은 해오라기 웃음을 머금은 함양의 얼과 혼이었다. 낙조는 그렇게 서글프고 아련한 여운이었다. 시대를 앞서서 아랍에서 오신 달마스님은 흑사병에 대한 혜안을 어떻게 전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