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upitere 하늘색 홍채
Dec 30. 2020
【우주의 새로운 시그널로서 시대의 유성】
【너그러운 태양이 혜성(헤르메스)를 타이르는 이치】
유성의 반짝임, 우주폭발, 초신성 발견, 나비의 날개짓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주 너머 우리에게 찾아오는 우주의 시그널은 인류와 자연환경, 생물에 어떠한 영향을 주어왔을까? 요절의 안타까움은 초신성 폭발과 유성의 사그라듬과 같이 역사에 시사하는 바가 있게 마련이다.
정치성이 지운 말로는 유전자에 고스란히 남게되고 역사의 산증인 산과 나무, 지각에 겸허하게 고개 숙여야될 운명인 진리를 알게 된다. 이집트와 진나라의 진부한 애석함은 시절의 성숙함과 추수의 계절을 막지 못 한 한이었나(역설적 표현)! 양당제는 새로움을 품고 낳는 둥지를 자청하며 쇄신•자정•정화로 다가간다.
교육자와 엘리트의 모순은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강요와 속박에 있었다. 바람직하다면 고지식한 방식의 고수는 지양해야할 학자의 면모다. 대학과 사회의 구조화의 폐해에서 연약한 새싹이 낙락장송으로 크는 이변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시험과 학점이 없이 기여분으로 졸업여부를 가늠하는 새로운 학제(피테르 대학)는 시대에 낭중지추로 사회에 자리매김했다.
에너지 탐색기는 새로운 사고와 방식을 추구한다. 간편과 동선의 축소에서 초래한 사회적 비만문제는 구시대의 낡은 사고에 경종을 울린다. 비엘리트들의 효율과 기상천외한 발상이 시대의 문제를 관통하여 바람직한 미래의 창으로 다가간다. 로봇과 AI에서 비엘리트의 재산권인 방식인격권(저작인격권의 한 종류)이 새로운 계층과 세대를 이루었다.
혜성과 유성의 접근의 두려움은 태양의 관대함으로 뚫자! 붉은빛과 푸른빛, 그 밖의 이면을 포함한 다양한 빛이 유연하게 정면승부에서 재치의 가치와 위트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풍신수길의 혜안의 역발상(래디컬 마켓-에릭 포즈너, 글렌 웨일 작, 박기영 옮김)은 위협받는 세계화 파고에서 정치적 갈등을 승화하여 팩스아메리카를 공고히 한다. 좌익과 비윤리적, 세계화의 파고에서 유연한 생각이 해상시대와 우주시대의 모험심을 키운다.
중국의 내로남불의 항변에 시류와 절차에서 수순을 밟는 지혜를 알라 타이른다. 화엄이 여는 중국공략의 길은 문화적 접근성에서 아노미를 방지하며 숙연한 수긍의 가치를 동살과 같이 내비친다. 돈오와 점수에서 문화적 포비아인 아노미 극복은 유사성에 있었다. 미래를 점철하는 수순은 나비날개짓과 태풍의 의중파악이 먼저다.
카오스가 우주의 시그널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독특한 독창성을 살리는 교육이 돈키오테 발상이 필요한 미래의 사회를 일군다. 교육이 풀지 못 한 문제는 아날로그의 감성인 최적화의 묘미로 다가간다. 타협의 산물에 찬물이 상쾌하다. 루게릭의 극복은 깨어있음을 이르는 키에르케고르였나? 소소한 존재의 실존이 아스라이 현묘롭다.
보리밟기 정책의 지양이 필요함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시류에 이르었다. 정보홍수와 빅데이터에서 채굴탐지기의 중요성은 시대를 아우르는 가치로 부상했다. 도표와 수치화가 디지털의 함정인 늪이 아닌 전망이길... 착상을 지우는 누의 어리석음이 시절의 아련한 천재들의 요절이다. 기억과 무의식계의 작용은 무상정등각에서 잠룡인 휴면상태의 유전자였다. 맛과 자극의 극치는 착상의 발로로 다가 오기에 우주와 유전자는 동일 궤도 속에 있다.
사그라드는 유성의 헌신에서 피어난 착상은 바보들의 행진에서 얌체와 무임승차자의 무정함에 반성을 일깨운다. 오징어가 붉은 이유는 친자기물인 먹물에 더한 빛의 보충으로 빨판의 흡입력을 높이는 이치가 담겨있었다. 부끄러운 과거가 먹칠에서 빛의 중요성을 알아간다. 낙오자인 '라이언일병구하기'의 교훈이 해돋이의 장관이다. 산정상이 담은 에너지와 착상의 축약인 코로나에 다가가는 루트(접근법)는 전통성과 토속의 중시에 담긴 세계화의 맥이 함께 호흡한다.
유럽의 귀족과 왕족이 미국으로 부터 복귀한다. 유럽의 새 시대는 새로운 화엄과 예수의 희생이었다. 감동과 동감, 연민, 인(측은지심은 잘 못 된 표현, 실재는 건전함을 일컬음)이 애수의 수건을 적신다. 혜초께서 피운 지혜의 샘은 서유기의 새로운 루트더라! 동으로 찾아든 해동성국과 더불어 태극과 상생의 풍물 속 하모니다. 원효와 혜초의 연동의 이치는 동과 서가 하나임을 자각케한다. 모험심(이소성)과 부동심의 묘에서 세옹지마(낙오자)와 요술피리(유학생) 간의 교류의 화합은 텃세 속 정착의 묘미를 음미케한다.
공동선과 공정, 청렴, 팔정도에서의 '박원형' 시조인 '시자'의 시사점('이익의 독점, 마이클 샌델'을 읽고)은 시류의 신음을 간과치 말라한다. 경험하지 않고 쓴 글은 무의미한가? 천연두를 막은 우두가 에이즈를 낳은 판단미스였던 사실이 콩고기에 열광케 한다. 방편이 아메리카 인디오에게 비극을 초래했듯 역사는 되풀이 되는 악순환을 끊는 경로의존성 탈피의 용단이 필요하다. 곰보배추의 잇점에서 식물에이즈로 다가온 파도이기도 하다. 서핑의 묘미는 동토의 그린란드가 다시금 희망으로 떠오르지 않기를 바란다.
콩고의 지표류에서 배양한 페니실린이 보스톤차사건 같은 우두의 악순환이기 전에 우주의 시그널에 겸허해지자! 세계의 자연유산으로 처녀림은 보호가치가 그보다 더 크다. 채굴탐색기가 루트를 여는 지금이 탐험의 위험을 줄이는 배려시기다. 주입식 주사제 보다 경구용으로 복용하는 차문화의 기치를 이어가자! 뻘밭의 마호가니(마노)가 꼬막을 키우듯 보감의 더러운 곳에서 지혜의 보물은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