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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Jul 04. 2018

노인과 택시

어떤 도둑

어쩌다 여행 중에 도둑을 맞았다. 뭐 일부분은 다시 찾기는 했지만....여행을 다니면서 나쁜 일 보다는 좋은 일을 더 많이 겪는 편이다. 자잘한 바가지에 수시로 당하기도 하고, 알고도 당해주기는 하지만 여행의 기분을 망칠 정도는 아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은 하지만...




노인의 삶은 그랬다. 사막의 어느 오아시스 같던 도시에서 태어났지만, 인생에는 딱히 오아시스가 없었다. 오아시스란 그런 존재였다. 사막을 건너갈 때 만나면 반갑지만, 그 안에서 살아야 하는 삶은 고단했다.

그러다 터를 잡은 곳은 오히려 더 작은 오아시스였다. 그저 아주 오래 전에 한 번 지어진 왕국의 성터, 그거  하나를 관광지 삼아 먹고 사는 동네. 어느 새 한 해도 반절이 꺽여 7월이다. 더없이 덥고 바람에는 습기 한 점  없는 텁텁한 건기의 시작. 저 먼 초원에 모래가 바람에도 배어든다. 이제 두어달 동안은 관광객들도 찾지 않을 시즌이었다. 낡은 택시로 밥벌이를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탐탁치 않은 시기다. 이래저래 공친 지도 며칠째.


다행히 오늘은 먼 도시까지 가는 손님이 있었다. 약 450km 떨어진 자신의 고향 도시로 가는 운행.보통 4명 정도를 싣고 한 명당 10만 숨,  그래서 한 번 갔다 오면 40만 숨(50달러) 정도를 벌 수 있는 일거리다.  그런데 내일은 3명 뿐이다. 네명을 모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처음 두 명에게는 10만숨, 9만숨을 불렀으니 평균보다도 못한 가격이다. 마지막 한 명에게는 다행히 13만숨을 받기로 했다. 32만숨. 그래도 하루 왕복 12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 거리를 생각하면 좀 아쉽다.  

픽업 시간이 가장 빠른 13만숨 짜리 여행객을 먼저 태우러 갔다. 8시 20분까지 오라고 했지만, 그냥 일찍 가 있기로 한다. 숙소 앞에 가니 7시가 조금 안 되어 있다. 숙소 밖으로 그 여행객이 나선다. 카레얀(한국인)이다. 파마를 이상하게 했다. 아침 산책을 나왔다가 너무 일찍 도착한 노인을 보고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다. 급하게 다시 들어가서 식사를 한다.


아침 식사를 할 동안 기다렸다가, 그를 태우고 노인은 다음 장소로 옮긴다. 또 다른 숙소 앞. 이번엔 이탈리안이다. 왠지 카레얀과 사이좋게 얘기를 한다. 오다가다 만난 사이인가 보다. 또 한 명을 태우러 갔다. 이번에도 동양인이다. 서먹하게 있는 거 같더니 두 동양인이 자기들끼리 얘길 하는 것 보니 그 또한 카레얀이다.


건기의 여느 날처럼 햇살은 따갑다. 구름 한 점도 없는 날씨. 옆자리 카레얀이 물통을 꺼내느라 자꾸 가방을 열고 닫는다. 보려고 한 건 아닌데, 두툼한 봉투가 보인다. 여행 경비가 들어 있는 봉투 같다고 노인은 생각한다. 괜히 자꾸 눈이 간다.


어디 사진 찍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했는데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가다보면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경 부분이 있다.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강이 흐르고 국경이 나뉘는 곳.  대부분의 여행객들에게 포토스팟으로 추천하는 곳이었다.

이런 풍경을 보는 사이에 털림;




그곳에 이르러 노인은 그들에게 잠깐 내려서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옆의 카레얀은 가방을 두고 내린다. 아까 그 돈봉투가 자꾸 눈 앞에 어른거린다. 그의 가방을 슬쩍 열어본다. 봉투에는 달러가 들어 있다. 이제 여행이 시작이라더니,  노인의 벌이에 비하면 꽤 큰돈이다.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봉투로 손이 간다. 창밖을 보니 어느 새 그들이 돌아오려는 듯 해 보였다. 급한 마음에 노인은 차에서 내린다. 100m만 더 걸어가보라고, 그러면 좀 더 다른 풍경이 보일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조금 갸웃거리긴 했지만 노인의 말대로 조금 더 반대방향으로 멀어진다. 다시 차에 올라 카레얀의 가방을 뒤진다. 급한 마음에 10달러와 20달러 짜리 몇 개를 급하게 집어서 숨긴다. 70불 정도. 그 정도는 빼둬도 티가 안 날 거 같다고 노인은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몰고 갔다. 그들 옆에 세우자 그들이 탄다. 슬쩍 옆 자리 까레얀의 눈치를 본다. 가방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는, 물을 꺼내마시고는 심상히 닫는다. 노인은 순간 아차 싶었지만, 카레얀은 그냥 자신이 열어놓고는 까먹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중간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린다. 노인은 세 명에게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말한다. 한 명이 남아 있으려고 하지만, 그에게도 갔다오라고 재차 얘기를 한다. 모두 떠나자 노인은 급히 차 어딘가에 돈을 숨긴다.


아직 4시간은 더 가야하는 거리. 햇볕은 쨍쨍하고 일직선으로 쭈욱 이어진 거친 도로는 끊임없이 차체를 흔든다. 사막과 초원의 경계. 에어컨을 틀어봐도 차안의 열기는 쉬이 가시지 않는다. 해가 높아질수록 차안에는 서서히 노곤함이 배어들었다.  어느새 그들도 잠이 들어가고 있다.

가는 내내 길이 저랬다.


절반쯤 도착한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세 명의 여행객은 따로 앉는다. 혼자 앉아 있는 노인 앞에 마침 지나가던 또 다른 택시 운전사가 앉는다. 이렇게 같은 길을 오래동안 오가다 보면 누구나 그렇게 알게 된다.


식사를 하는 사이 카레얀이 컴퓨터를 꺼내서 무언가를 한다. 노인은 괜히 옆에 가서 슬쩍 본다.  뭔가 짠뜩 표와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USD라는 단어도 적혀 있다. 세 명이서 무언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혹시 돈을 훔친 걸 눈치 챈 걸까....긴장하며 그들의 눈치를 보는데, 무슨 얘기를 하다가 웃음을 터트린다. 괜히 스스로 과민한 탓이라고 노인은 생각한다.


세 시간 남짓 남은 거리. 이런 저런 말을 걸어도 그들은 반응은 심드렁하다. 긴 이동에 지친 탓이라 생각해보지만, 어딘가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도시에 도착하여 트렁크를 열었다. 다른 두 명은 내려서 짐을 내리는데, 옆 자리의 카레얀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더니 노인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며 말한다. " You don't have anything to tell me?"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가 눈치를 채었다는 걸 노인은 안다. 노인은 못 믿겠으면 차 안을 뒤져보라고 카레얀에게 손짓을 한다. " I know you steal my money." 노인은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 지나가던 행인을 불러 통역을 부탁한다. 그 남자에게 카레얀이 말한다. " The taxi driver steal my money." 행인은 통역을 해주지만, 그의 표정에는 여행객이 괜한 의심을 하는 거라는 식의 불쾌감이 배어 있다.  


카레얀은 자신이 택시를 예약한 투어리스트 인포에 전화를 걸어달라고 한다. 노인은 전화를 건다. 노인과 그는 차에서 내려 전화를 한다.  카레얀과 인포메이션 담당자가 통화하는 사이 또 다른 카레얀이 차를 뒤진다. 노인은 황급히 차로 간다. 노인이 차로 돌아가 그 카레얀을 제지하려는 사이에, 어느 새 그의 손길이 돈을 숨겨놓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 낡은 종이들 사이에 끼워둔 달러. 그의 손길을 치우려는 새에 어느새 달러가 흘러 나온다. 그가 달러를 들고 소리를 치자,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조금전까지 노인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이들의 시선은 사라지고, 여기저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인포와 통화를 하던 카레얀은 전화를 끊고는, 그 돈을 받아들더니 조금은 화가 난다는 듯, 또 조금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자신의 짐을 들고서는 성큼성큼 자리를 떠난다.  


아니다. 갑자기 그가 돌아서서 온다. 그러더니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

 "Anyway, I'll give you taxi fare. I know the fare is also overpriced. I know you still stole 20dollars.  But I promised it so I'll pay. Shame on you, old man."


그들이 자리를 뜨고 난 뒤, 노인에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눈빛이 따갑다.

노인은 황급히 택시에 올라 자리를 뜬다.


햇살은 여전히 뜨겁고, 손에 쥔 택시 요금도 손을 데일 듯이 따갑다.

오늘은 왠지 돌아가는 길이 더 멀게 느껴질 거 같다고, 노인은 생각한다.



50달러는 따로 숙박비 내려고 따로 빼놓은 거라 너무 딱 티가 났고, 20달러는 계산상으로는 없어진 게 분명한데 혹여라도 내 기억이 잘못되었다면 그 또한 괜한 의심인 거 같아 50달러만 찾고 그냥 돌아왔다. 사실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안했다. 중간에 주유소랑 식당을 들렀으니 어디다 쓰든, 아는 이에게 맡기든 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굳이 택시비를 준 이유는 안 그랬으면 그 또한 마음이 편치는 않았으리라 싶어서다. 내가 준 택시비와 그가 훔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20달러, 그리고 다른 승객들에게 받은 택시비를 합치면 그래야 평소에 그가 받는 요금에 팁 좀 얹어주는 수준이 될 거라는 계산이 있기도 했고. 어쨌거나 도둑질(?)만 아니었으면 그는 꽤 친절한 택시 기사였던 건 사실이니까.

어쨌거나 불쾌한 경험을 겪었지만 덕북에 이렇게 또 얼렁뚱땅 단편 소설(?) 한 편을 얻었으니 그를 나의 뮤즈라고 불러야 하나... 싶기도 하다.


이상... 우즈베키스탄 히바(키바)에서 부하라(부카라) 가는 길에 돈 도둑맞았다가 다시 찾은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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