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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Jul 07. 2019

우연히 살아남은 자의 하루

언제나 같은 출근길이었다. 출근길의 풍경이 언제나 그러하듯, 다들 채 시작하지도 않은 하루에 지친 표정. 언제나 같은 하루였다. 별 의미 없는 회의, 별 의미 없는 잡담, 별 의미 없는 험담.  아마도 그렇게 언제나 같은 하루였을 것이다.  


갑자기 인터넷 실검에 ‘잠원동 건물 붕괴’라는 기사가 뜰 때만 해도 그랬다.  자신이 사는 동네이긴 하지만, 사진으로 봐서는 어디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중상을 입었다는 뉴스가 이어져도, 설마 사람이 죽기야 할까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저 막연히 무사하리라 생각했다. 일이라는 게 또 밀려오니 어느새 그 일은 또 잠시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언제나 같은 퇴근길이었다.  하루를 마친 이들의 표정은 또 언제나처럼 고단했고, 전철 안에는 초여름의 후덥지근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그제야 다시 떠올랐다. 대체 어디일까. 다시 기사를 검색해보니, 결국 중상을 입은 이는 생을 달리 했다고 한다.  


지하철을 내려 집으로 오는 길에, 대체 어디인가 궁금해했는데 딱히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언제나 오가던 그 길이 어수선하다. 4차선 거리는 막혀 있고, 소방차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접근을 막기 위한 듯, 드라마에서 범죄현장에서나 보던 접근 금지 테이핑이 여기저기 둘러쳐져 있다.  

그리고, 그 거리의 한편에 무너져 내린 건물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군가가 죽어갔을 것이다.  


그 순간, 그와 삶 사이로 어떤 우연성이, 새삼 잊고 있던 불확실성이 스며든다. 그것은 언제나 편재하였으나 또 언제나 망각하던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는 오늘 '그저 그곳에 있지 않았다'는 우연으로 인해 살아남았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사건은 인생은 종종 확률론적인 게임고,  삶이란 그렇게 우연으로 가득 찬 있음을 알려주기 위한 운명의 신의 장난 아니 만행일지도 모르겠다. 해서 우리는 종종 '그저 그 순간에 그곳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남아 내일을 맞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죽음은 도처에 있고 삶이란 그렇게 위태로운 것이거늘, 언제나 또 그 사실을 잊고서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며 살아가는 게 그 남자의 하루였을 것이다.


우리는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남은 주제에, 쓸데없이 오만하고 쓸데없이 건방진 존재들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몰타의 매>에 그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정작 소설 내용은 기억이 나지도 않는데, 소설 중에 언급되는 에피소드는 기억이 나는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플릿크래프트 우화'라고 불리는 이야기.  

플릿크래프트라는 한 남자가 있다. 훌륭한 시민이자,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인 남자. 어느 날 우연히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공사장 앞을 지나는 그에게 10층 정도의 높이에서 커다란 빔이 떨어져 내린다. 다행히 그 빔은 그를 비켜 바닥에 떨어지고, 그는 부서진 보도 조각이 튀면서 생겨난 작은 찰과상 외에는 무사했다.    


  "플릿크래프트는 훌륭한 시민이자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외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주변 환경에 맞추어 사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주변 사람들도 그와 같았다. 그가 아는 인생은 공평하고 정연하고 이성적이고 책임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철제 빔의 추락이 인생은 본래 그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훌륭한 시민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도 사무실에서 식당에 가다가 떨어지는 빔에 맞아 즉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죽음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찾아오며, 사람은 눈먼 운명이 허락하는 동안만 목숨을 부지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그런 운명의 불공평함이 아니었다. 최초의 충격이 지난 뒤 그 점은 받아들였다. 그를 괴롭힌 것은 그가 영위해 온 정연한 일상이라는 게 인생 본래의 길이 아니라 인생을 벗어난 길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는 철제 빔이 추락한 장소에서 5미터도 가기 전에 이 새로운 발견에 따라 자기 인생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다시 평화를 되찾지 못하리란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마쳤을 때 변화의 방법을 찾았다. 인생은 난데없는 빔의 추락으로 그 자리에서 끝날 수도 있으니 그 자신도 난데없이 살던 곳을 떠나서 인생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도 남들만큼 가족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 정도 재산을 남겨 주고 떠나면 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았고, 그의 가족애는 결별을 못 견딜 만큼 남다른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삶이 많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가족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삶을 시작했지만, 결국 또 다른 직장에서 또 다른 부인과 또 다른 아이를 낳아서 살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크다고 하면 큰 변화고, 작다고 하면 작은 변화일지도 모른다.  


다만 어떤 우연이 삶에 배어들어도 삶의 관성은 그렇게 또 우리를 일상으로 끌어들인다.  그것이 삶이 지닌 고달픈 생명력, 본의 아니게 삶을 부여받은 자들의 의무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 무의미하다.  긴 글을 썼지만 이건 그냥 어떤 망연함 앞에서 선 인간의 하릴없는 하소연이겠지.


다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 내일은 국화라도 한 송이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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