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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Aug 15. 2017

글을 쓰다, 글이 쓰다

비가 내린다. 그러니까 이 글은 어떤 과잉의 증후를 보일 것이다. 

후둑후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이 여름이 작별을 고하는 소리처럼 들려온다.

그러니까, "이번 여름은 여기까지...." 뭐 이런 느낌.

그런 날의 오후에는 글을 써야 했다.

그건 딱히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글을 쓴다'

.. 라는 건 어쩌면 '무언가를 비우는 일'이었으니까.


책장을 둘러보니 중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장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그러게... 초등학교 시절엔 검사 받아가면서 써야 했던 그 글들이 숙제 같았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쓰고 있었다.

그건 그날 그날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그날의 마음들을 종이 위에 비워내는 작업이었다.중증 중2병 환자가 까칠하기 그지없던 염세적인 20대를 지나,넉살좋은 마흔의 아재가 되어가는 여정은 스스로의 이야기지만낯설게 기이하고, 그리고 또 참 일상적이다.  한 장 한장  넘기다 보면 군데군데 실소가 배어든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인간이 된 건 그렇게 비워내어서 일 것이다.첫 사랑의 설렘과 이별 후의 비애, 번번이 떨어지던 취업 실패의 좌절감과 불안함, 낯선 곳을 떠돌며 마주한 기대감.. 블라블라.

그렇게 글을 쓴다는 건 나를 위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이었다. 나쁜 것들은 그리 비워내고 좋은 것들은 그리 그 종이 위에 담아내면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낼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

.... 라는 건 때론 '허세'였다.


그 글들엔 겉멋이 가득했고, 또 그 글들엔 무언가의 과잉이 있었다.가진 것 없는 알량한 지적 자존감을 채울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을 터다. 어차피 쭈글쭈글한 뇌 따위가 섹시할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런 뇌라도 섹시하게 봐주겠다는 시절이 왔으니 그런 거라도 어필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런 글들을 쓰고 나면 쪽팔렸다."나 이런 것도 할 줄 안다아~!" 라고 떠벌리는 꼬마애가 된 거 같은 기분이었다.

해서 누군가의 시집을 내려놓은 후에 쓰는 시들은 언제나 내 것이 아닌 말들로 이루어져 종이 위에서 길을 잃었다.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은 그렇게 어느 새  하나하나 쓸 수 없는 것들이 되어 있다.

글 따위가 뭐라고... 생각하게 되는 날들이었다.


그러다 '글을 쓴다'

... 라는 건 어느 순간 '밥벌이'가 되어 있었다.


딱히 글 쓰는 일을 해보겠다고 맘 먹은 건 아니었는데 그러고 있었다. 밥벌이로 글을 쓰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하얀 모니터 위에서 깜박이는 커서를 대할 때면,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 하얀 모니터 위에 검은 글자를 채워가는 건  눈보라치는 광대한  눈길 위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내어가는 일 같았다. 그 끝이 뭐 대단한 북극점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대청 마루 밖 수세식 화장실 같이 남루한 곳일 때가 더 많았지만...그렇다고 거기까지 가는 길이 마냥... 항상 쉽지만은 않았다.

어떤 글들은 쓰고 싶지 않은데도 써야 했고, 또 어떤 글들은 아무 관심이 없는데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건, 그렇게 시지프스의 노가다가 되었다.


허나 '글을 쓴다'

... 라는 건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일이었다.


아무 관심없던 것들, 혹은 별 의미없이 생각하던 것들조차 글을 써야 할 대상이 되는 순간 신비로운 것이 되어 있었다.  알고 있던 것들이 모르고 있던 것들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새삼 당연하지 않았고,낯선 것들은 정말 낯선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저녁이 있었다.

인터뷰를 하면 누군가가 더 궁금해졌고, 어딘가를 가면 그곳의 삶들이 남긴 시간의 지층이 궁금해졌다.

글을 쓴다라는 건 그래서, 궁금했고 이해해야 했고 공감해야 하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공감과 이해의 폭 만큼 아해는 조금씩 자라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해서 '글을 쓴다'

... 라는 건 '마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본 것들, 조사한 것들, 헤아려 본 것들,

누군가 차마 내뱉어 말하지 못하였으되 담겨 있던 마음들과 누군가 보여주지 않았으나 보아야 했던 마음들.

현학적인 말들로 기교를 부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전하기가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은 날에는 마시지도 못하는 술 한잔을 앞에 두고 멍하니 있어야만 했다.  

읽는 이에게 나의, 혹은 누군가의, 어떤 것의, 어딘가의 마음을 잘 전하기 위해서는 하나 둘 더하기 보단 하나 둘 더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그렇게 생각을 다듬고 다듬어야 그제서야 글 한 줄이 나왔다.

이제까지 써왔던 그 모든 글들이, 참 부끄러웠다.


하여 '글을 쓴다'

...라는 건 '마음을 다듬는 일'이었다.


너무 뒤늦게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글을 쓴다고
좋은 인간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깊이 있는 글을 쓴다고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어떤 날은 정작 나 자신도 그리 살 자신도 없는 공자님 찜쪄먹는 소리를  써놓는다. 행하지는 못해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사람들이 무얼 원할지는 또  영악하게 잘도 눈치를 채니 그런 잡문이 나온다.

뱁새 같은 인간이 황새 같은 글을 써 놓는다.

그런데 그런 글을 써놓고 나면, 쪽팔린다.쪽팔려서라도 좀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만큼, 그 글만큼의 인간이 되고 싶어진다.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은 만큼, 그 깊이 만큼의 인간이 되고 싶어진다.


글을 쓴다는 건,

그렇게 나란 인간에게게 보내는 끊임없는 다그침이었다.


아마 이 글도 돌아선 어느 자리에선 , 꽤 부끄러울 것이다.

글이라는 게, 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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