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생선을 찾아서...
우리 집에는 귀엽기만 하고 아무짝에 쓸데없는 짐승(고양이)과 귀엽지도 않은데 쓸데없는 짐승(나)이 함께 공존한다. 같이 살아보니 느끼는 것은, 강아지라는 짐승이 2차원의 혼돈을 불러일으킨다면 고양이라는 짐승은 3차원의 혼돈을 일으킨다는 거다.
어쨌거나 귀엽지도 않은데 쓰잘데기 없는 짐승인 나는 그들을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야 할 운명이다. 그러다 집에 생선 인형이 생겼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고,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면 안 되고... 하는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자. 그러니까 고양이는 뭔가 그런 비릿한 것들을 좋아한다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고양이=생선을 좋아하는 동물"이라는 가정을 하고 고양이용 장난감 인형을 생선 모양으로 만든다. 심지어 생선 인형은 숫제 멀리서 사진을 찍으면 진짜 같아 보일 지경이다.
그러다 떠올랐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한 번도 실제 생선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길냥이 어미를 주운 누군가에 의해 태어난, 집고양이. 한평생 사료를 주식으로 먹고살았으니... 생선 따위를 본 적은 더더구나 없다. 심지어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 구운 생선을 보고도 심드렁하다. 그런데 하필 생선 모양의 고양이 인형을 사 오다니.
그러니까 이런 아이러니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고양이는 이미 그 본성을 잃어거나, 그 본성을 개발해 본 적도 없는데... 정작 우리는 그들이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예전의 본성을 떠올리며, 그들이 종(種)적으로 좋아한다고 상상하는 사물을 반영하여 인형을 만든다. 정작 그들의 본성을 거세하는 환경 속에서 키워놓고 말이다.
'고양이의 생선'을 인간에게 투영하면 어떨까.고양이로 따지자면 생선 같은 것. 원래는 그들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던 것, 추구했어야 하는 것인데... 놓쳐버리고 망각해버린 것들이 있지 않을까.
'인간'이라는 짐승이 원래 타고나기를 '돈'과 '명예'에 집착하고 추구하라고 태어난 건 아니지 않았을까? 태초에는 그런 게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건 뭘까. 그렇게 잃어버리고 망각한 인간들의 생선은.
P.S
더 재미있는 건, 썰에 따르자면 고양이는 원래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양이는 '식육목(Carnivora, 食肉目) 고양이과'에 속하는 짐승이다. 한마디로 육식 동물. '고양이 = 생선을 좋아하는 동물'이라는 선입견은 2차 대전 이후 사람이 먹을 육류도 부족한 상황에 고양이에게 육류를 먹일 수 없는 상황에서 고양이 사료 회사들이 고양이 사료에 육류 대신 생선을 사용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들은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료를 통해서 고양이들이 생선 맛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인간은 원래 돈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자본주의가 인간은 돈을 좋아한다고 세뇌시키고, 그렇게 만들어서 이 사회를 굴러가게 만들고... 그렇게 돌아가는 속도 안에서 인간은 점점 스스로가 돈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