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서는 또 뭉기적거린다. 습관처럼 들어간 인스타를 슥슥 스크롤하다 보니 시간이 참 잘도 간다. 부정적인 뉴스, 남의 성공 스토리,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들.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데 보게 된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내 머리 속도 이런 게 아닐까.
뇌과학자들의 말을 따르면, 우리 뇌 속에서는 약 860억~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하나의 신경 세포를 다른 신경 세포와 연결하는 시냅스는 100조 개가 넘게 있다고 한다. 즉 하나의 신경 세포가 수백, 수천 개의 시냅스를 뻗어서 다른 신경 세포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신경망 네트워크가 갖추어지고, 활성화되면서 우리의 기억과 감정과 의식을 만들어낸다.
뭐, 숫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상상도 안 된다. 그런데, 저게 왠지 내 머릿속 같다. 소셜 네트워크나 신경망 네트워크나. 다 거기서 거기지.
뉴런은 유저고, 시냅스는 팔로우다.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의 머릿속에는 제각각의 인스타그램이 하나 론칭이 되는 것이다. 서비스를 처음 오픈했으니 아기의 신경세포는 일단 서로 마구마구 팔로우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유저(신경세포)가 올리는 피드가 별로 흥미롭지 않고, 유용하지 않다는 깨닫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피드를 끊게 된다.
‘아기’님이 '배고픔'을 팔로우하셨습니다, '울기'를 팔로우하셨습니다.
일단 닥치는 대로 다 팔로우. 처음엔 모든 게 신기하니까. 천장의 선풍기도, 강아지 짖는 소리도, 엄마 목소리도. 전부 다 팔로우.
그런데 몇 달 지나면 깨닫는다. "아, 천장 무늬는 별로 중요하지 않네." 언팔로우.
"강아지 소리? 엄마가 올 때 나는 소리가 더 중요해." 우선순위 재조정.
그렇게 3년쯤 지나면 기본 세팅이 완료된다.
그렇게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그 모든 과정이 일종의 통계적 학습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나에게 들려오는 말들을 통해 언어를 배우고, 어떻게 했을 때 엄마가 오는지, 부모가 나를 어떻게 달래는지 혹은 화를 내는지를 통해 아기는 감정적 교류를 배우게 될 것이다.
“감정은 세계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당신은 감각 입력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당신 감정의 능동적 구성자이다. 당신의 뇌는 감각 입력과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구성하고 행동을 지시한다. 만약 당신에게 과거 경험을 표상하는 개념이 없다면, 당신의 모든 감각 입력은 잡음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런 감각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고, 무엇으로 인해 야기됐으며, 이것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 당신의 뇌는 감각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 의미가 때로는 감정인 것이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그러니 감정조차도 외부의 반응에 의해서 자동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다. 외부에서 반응이 오면 나의 뇌가 그동안의 과거 데이터를 검색한다. 그리고 거기에 기반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을 구성하는 거다.
똑같은 서비스를 쓰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피드를 보고 있는 건 아니다. 똑같은 사건을 겪으면서도 모두가 똑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다. 뇌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누군가는 분노와 증오와 관련된 부분들이 활성화되고, 누군가는 동정과 자비와 관련된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들이 활성화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 머릿속의 인플루언서들을 한 번 보자.
1)상위 TOP 3 계정
1위: 버럭 봇 (@instant_rage012)
팔로워: 982만 명
주요 콘텐츠: "뭐 이따위로 해", "저 XX 왜 저래?, "아 진짜 짜증 나"
포스팅: 1초당 3회
2위: 완벽주의 인플루언서 (@never_enough)
팔로워: 847만 명
대표 어록: "이 정도론 부족해", "다시 해", "남들은 더 잘하던데"
공동구매 진행 : “자아비판용 고급가죽 채찍 50% 세일, 공장장님과 싸우고 가져왔어요.”
3위: 비교봇 (@comparing_everything)
팔로워: 756만 명
대표 어록 : “쟤는 또 여행 갔네” , "쟤는 저렇게 잘 사는데...",”공부는 내가 더 잘했는데…”
주요 해시태그: #나만 못 사나 #왜나만
2)기타 바닥권 계정들
여유로운 나 (@chill_vibes_nononono)
팔로워: 12명
마지막 게시물: 3년 전
상태: 휴면 계정
따뜻한 나 (@warm_heart_000000)
팔로워: 5명
게시물 : 2개
댓글: "아직도 이거 하세요?"
흐음… 이래서 피드가 엉망이었던 거다. 알고리즘 똥망.
"아, 이 유저는 분노를 유발하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추천 피드에는 늘 같은 것들만. "오늘의 짜증 포인트" "화낼 만한 상황 베스트 10" "남 탓하기 좋은 멘트 모음" 이런 게 깔리는 거다.
만약 내 뇌의 세팅이 ‘분노’, ‘증오’를 자극하는 파워 인플루언서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면,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피드를 보여주며, 일상과 인생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행동할 것이다.
내가 매일 보는 피드:
아침 출근길: "저 차 왜 저렇게 가로막고" (버럭 봇)
회의 시간: "저 사람 말은 왜 저렇게 길어" (버럭 봇)
점심: "다른 팀은 다 잘하던데" (비교봇)
오후: "이것도 제대로 못 해?" (완벽주의자)
저녁: "오늘도 별로였네" (자책 인플루언서)
내가 안 보는 피드:
"오늘 날씨 좋네" (여유로운 나)
"이것도 괜찮잖아" (따뜻한 나)
"뭐 어때, 웃고 살자" (낙천적인 나)
그리고 그런 되먹임을 통해서 내 뇌에서는 그런 부정적인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이 늘어나고, 그렇게 여론이 형성된다. 신경세포들이 지속적으로 그런 패턴으로 활성화되면서 그런 사고와 행동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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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여유로운 나’에게 좋아요 하나 박고,
‘버럭 봇’을 언팔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