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가 아니라 기능

뇌가 엉터리인 이유

by 아룬

틀은 ‘예측’한다


우리의 뇌가 이렇게 정보를 처리하는 이유는 빠른 예측을 위해서다. 뇌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구축한 자신의 내적모델에 현재 새롭게 들어오는 데이터를 반영하며 끊임없는 추론을 통해 예측을 한다. 우리가 과거에 쌓아둔 경험과 지금 현재 우리가 지각하는 것들을 종합하여 끊임없이 예측한다.


스키마라라는 툴은 이럴 때도 유용하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인지적 구두쇠’이니까 .조금이라도 인지능력을 아끼려 들게 마련이다. 스키마는 그리한 예측 조차 수월하게 해준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 둔 스키마에 따라, 인지적 효율성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예측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도발적인 제목이 끌려서 읽었던 책이 한 권 있다. 제정신이라는 착각, 심지어 부제는 더 인상적이다.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마침 확신에 찬 헛소리를 늘어놓는 이들로 즐비한 직장을 다니던 중이어서 그랬을까 훅 와닿았다. 작가는 놀랍게도 인간의 인식적 비합리성은 그 자체로 '뇌의 정상적인 기능'이라고 한다.


뇌는 그렇게 예측 기계가 되어 내적 세계 모델과 주어지는 감각 데이터를 끊임없이 비교해 세계상을 구성한다. 이런 비교에서 뇌의 제일가는 모토는 최대한 진실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기에, 인식적 비합리성이 생겨난다. 우리의 확신 - 내적 세계 모델의 중요한 부분 - 은 때에 따라 적잖이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비합리적 확신을 갖는 경향은 시스템상의 결함도, 맹장처럼 쓸모없는 것도, 부수 현상도 아니다. 이것은 뇌의 아주 '정상적인' 기능 방식의 결과다.

<제 정신이라는 착각>, 필리프 슈테르처

저렇게 말하고도 부족해서일까. 아주 못을 박는다.


버그가 아니라 특성이다. It's not a bug, it's a feature.


그 자체로 뇌의 가지고 있는 일종의 본질적 속성에 가깝다는 뜻이다.


20251026_2200_Illusion d'optique magistrale_simple_compose_01k8g9mqctfjaa694y1pdms1gc.png ⓒGenerated by AI using Sora


때론 우리는 사소한 것들의 공포를 과장해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건 원시의 숲 속에서, 풀 숲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 하나에도 과잉반응하고 조심했던 이들이 더 많이 살아남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냥 다람쥐가 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독사나 맹수가 내는 소리였을 수도 있으니까. 걸려 있는 게 크다면, 더 조심하는 게 오히려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지금은 비합리적으로 여겨질 지라도.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모든 확신을 경험을 이해하고, 지각을 더 커다란 그림으로 정돈하고, 모순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찾도록 도와준다. 우리 모두는 자신도 모르는 사리에 종종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데, 이것은 틀림없이 적응적인 행동이다. 이런 인식적 비합리성 경향이 얼마나 두드러지는지는 우리 머릿속 예측 기계가 예측을 얼마나 신뢰하고, 새로운 감각 데이터에 얼마나 비중을 두는지에 좌우된다. “

<제 정신이라는 착각> 필리프 슈테르처


만약 틀이 없다면 매 순간 모든 걸 처음부터 판단해야 한다. 길을 건널 때마다 "저 차는 멈출까? 안 멈출까?"를 처음부터 분석해야 한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 사람은 위험할까? 안전할까?"를 제로베이스에서 판단해야 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뇌는 틀을 만들고 데이터를 쌓고 그걸 기반으로 예측한다. "빨간 불에는 멈춘다", "웃는 사람은 대체로 안전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한다." 효율적이다. 빠르다. 편하다. 원시 시대 숲 속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면 일단 도망가야 한다. 다람쥐 소리인지 독사 소리인지 분석하다가는 물려 죽는다. 틀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반응하고 살아남았다.

20251026_2207_Quantum Clockwork Brain_simple_compose_01k8ga1d3nfkht3p9k0htp0rf2.png ⓒGenerated by AI using Sora

지나치게 단순화하 느낌이 없진 않지만, 인간의 뇌는 과거의 경험을 기반을 하여, 현재 자신에게 주어지는 정보를 해석하고, 이를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정보처리센터라고 볼 수 있다.


뭐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스키마, 시스템1, 디폴트모드 어쩌고 하는 용어들 때문에 괜히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학문적인 글을 쓰려는 게 아니니까. 그냥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다루려는 것 뿐이다.


그냥 심플하게 생각하면 그렇다. 똑같은 일이 닥쳤을 때 나와 내 친구는 느끼는 기분이나 감정, 그에 따라 하는 행동이 다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다가 누군가가 버튼을 눌러 다시 열릴 때마다, 성격 급한 나는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느긋한 내 친구는 그러려니 한다.


그런 차이들.


심리학이라면 성격이라고 부를 테고,
불교라면 업식이라 부를 수도 있을 그런 정도의 것들.


요는 나에게는 어떤 어떤 내적 모델이 구축되어 있고, 나는 그 구조에 맞춰서 감각하고 생각하고 반응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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