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마라는 툴
이렇게 생겨난 신경망 네트워크가 결국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 모델이 된다. 기계라면 처음부터 알고리즘을 설정해 놓고서 데이터를 처리하겠지만, 인간이 그럴 리가 없다. 대신 어떤 데이터(경험)가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알고리즘(사고방식) 조차도 그에 맞춰 설정된다.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이 일차적으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하게 된다.
우리가 들은 말, 우리가 들은 어떤 장면, 누군가 우리에게 한 행동들, 그런 것들이 한 줄의 코드가 되어 우리에 새겨진다. 기억 속에 남겨진 과거의 경험들이 그 밑바탕을 차지할테고, 이것들을 기반으로 현재의 경험들도 해석하고 반응하게 될 것이다.
재미있는 건 우리의 뇌는 ‘기억’을 기록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뇌에는 원본 형태의 모든 에피소드 메모리를 저장할 만큼의 공간이 없다. JPEG와 같이, 뇌는 기저함수를 사용하여 메모리의 압축된 표현을 저장한다. 즉, 에피소드 메모리를 구성하는 순간촬영사진(스냅샷)들을 저장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압축된 표현을 스키마schema라고 부른다.
<나라는 착각>, 그레고리 번스
스키마가 한 번 형성되면, 우리 뇌는 그 이후로 보고 듣게 되는 정보를 스키마와 일치하도록 편향시킨다… 스키마의 장점은 효율성에 있다. 스키마가 한 번 만들어지면, 새로운 사건은 그 스키마의 편차에 따라 처리되고 저장된다…. 또한 스키마는 무작위로 보일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 이해의 틀을 제공한다. 이런 압축된 표현들은 당신을 '당신'으로 만들거나, 적어도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으로 만든다.
<나라는 착각>, 그레고리 번스
이제 스키마는 그 자체로 일종의 필터가 된다.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기억하지 않을지,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지에 대한 것조차 정한다. 기존의 기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새롭게 들어오는 정보들은 해석되고 다시 새롭게 내적 모델의 기반이 된다. 일종의 되먹임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거였다. 내 머릿속에는 하나의 '틀'이 있다. 40년간 만들어진. 그 틀로 세상을 본다. 세상이 그 틀과 다르면 짜증이 난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였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누군가 "잠깐만요!" 하며 뛰어왔다. 센서가 감지하고 문이 다시 열렸다. 그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순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아... 진짜.'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얼굴에 다 나왔을 것이다. 턱에 힘이 들어가고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 옆의 친구를 힐끗 봤다. 그는 멀쩡하다. 그냥 아무 신경도 안 쓴다. 거울을 보며 얼굴에 뭐 묻은 게 없나 보고 있는 모습이 능청스럽기까지 하다. 뭐가 다른 걸까? 똑같은 상황인데.
엘리베이터는 "내 시간을 방해하는 것"이라는 틀. 그래서 늦게 타는 사람은 방해자가 되고, 짜증이 난다. 내 친구는 다른 틀을 가지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그냥 이동 수단, 오히려 바쁜 일상에서 오히려 잠깐 자신을 살펴 볼 수 있는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늦게 타는 사람은 그냥 동승자일 뿐, 그는 여유롭다. 같은 엘리베이터, 다른 틀.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데이터’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 대단하다. 자율주행차를 떠올려 보자. 카메라가 있어야 하고 그걸 AI로 분석해서 장애물과의 거리를 측정하고 끊임없이 모니터링하여 속도를 조절하고, 방향을 튼다.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엄청 대단하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 대단한 걸 말도 안 될 만큼 쉽게 해낸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데이터처리 능력을 타고 났다는 뜻이다.
스키마가 유용한 건,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만큼 데이터처리의 속도를 올려준다. 그렇다. 모든 문제를 원론적인 측면에서 하나하나 검토하는 것은 번잡스럽다. 하다 못해서 고객 불만 하나를 처리하는 데에도 프로토콜이 있다. 하물며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고 접하게 되는 이슈들은 얼마나 다양할까. 그것들을 처리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하나의 매뉴얼이 생겨나는 것이다. 좋든 나쁘든, 이런 식의 프로세스를 갖추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틀이라는 건 한 번 만들기는 어렵지만, 그 뒤로는 유용하다. 이제 그 틀에 맞춰서 일을 진행시키면 되니까. 회사에서 업무를 해도 그렇다. 새로운 업무를 처음 접하면 프로세스를 잡고 R&R을 나누고 협의를 한다. 그 과정은 조금 고단할 수 있지만, 잘만 짜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조금은 순탄하다.
정보처리센터라고 했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는 게 아니다.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그냥 누락시키고, 우리가 예상하던 것과 별 차이 없는 것은 그냥 넘긴다. ‘인지력’과 ‘주의력’은 그 자체로 중요한 자산이니까. 그래서 꼭 필요할 때만 시스템2가 가동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시스템1이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건 이런 틀, 스키마들일 것이다.
틀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을 조금은 자동화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는 트레이드오프가 있다. 좋은 점의 이면에는 어떤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는 일종의 왜곡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스키마라는 형태로 우리의 머리 속에 생겨난 틀은 이제 새로운 것들을 재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 그것이 틀의 역할이다. 비정형의 사실들을 나의 뇌가 이해하기 쉬운(혹은 이해하고 싶은) 방식으로 조작하고 구성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틀에 적합하지 않은 것들은 조금씩 잘라내거나 틀에 맞추기 위해 덧댄다. 요리로 따지면 재료를 전처리하는 느낌이랄까.
나의 틀이 동그라미라면 네모난 세상 일도 동그랗게 잘라서 보게 된다. 이제 내 머리 속에서 구축된 하나의 모델은, 내외부의 정보들을 그렇게 내가 만든 틀에 맞추어 해석한다. 그것이 객관적 현실에 부합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와 나의 뇌가 얻게 되는 이점은 정보를 처리하는데 드는 인지력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누구나 이런 내적 모델을, 스키마를 현실의 문제를 해석하고 해결하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게 그렇듯 한 번 구축되고 나면 이제 이 모델들은 일종의 관성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조차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주관적으로 기억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에 벌어지는 일들조차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인식 구조,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정신적 모델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렇게 생겨난 인식 구조를 바탕으로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처리한 정보의 결과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다음 문제다. 받아들인 정보들을 나의 틀에 맞춰서 스스로 납득할 만한 스토리를 만들어내었다면 인간은 만족한다. 여기서의 만족은 그 결과가 원하던 결과인가 아닌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 머리 속에서는 그것들이 익숙한 방식이고, 익숙하다는 건 인지적으로 효율적이기에 그렇게 행동할 뿐이다. 뇌가 원하는 건 그런 효율성이지, 결과의 퀄리티가 아니다. 물론 제 나름으로는 그것이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했겠지만.
뭐랄까. 요리로 따지자면 요리를 하게 편한가 아닌가의 문제지 요리가 맛이 있냐는 별 상관없다고나 할까.
이렇게 나의 뇌는 나를 말아먹는다.
뭐랄까. 일을 개똥같이 해놓고는 “이거 원래 이렇게 하는 건데요.”라고 당당하게 구는 부하직원 같다. 근데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그 부하직원이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