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이야기의 씨앗을 심는다

그래서 나는 왜 이 모양인가?

by 아룬

긴 글을 써왔지만, 그래서 “내가 왜 이 모양인지” 깨달았느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고민을 하고 지식을 조금 쌓았다고, 삶이 냉큼 달라지지 않는다. 부처님 얘기를 열심히 하는 유튜버들이라고 다 성불을 했을 리도 없는 것과 매한가지다.


이건 일종의 조각모음 같은 행동이었다. 이래저래 널부러트려 놓은 삶의 파편들 다시 주워 담아 복기해 보는 정도. 그중에서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쓸만한 것은 다시 먼지를 털어 담고, 너무 뾰족한 것은 적당히 갈아서 다시 찔리지 않게 다듬고. 뭐 그런 정도의 일.


다만 이건 어떤 씨앗을 심는 일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우리에게 심어주는 이야기의 씨앗들이 종종 우리를 만들어간다.


나는 나에게 어떤 이야기의 씨앗을 심는다.

마흔 살 즈음의 나는 내가 이미 너무 늙었고, 내 인생은 망가졌으며 더 나아갈 바 없는 어떤 종착지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나의 패배한 뇌는 그런 상태를 예측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움직여서, 일종의 자기실현적인 예언을 나에게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내 인생은 지금보다 더 형편없을 수도 있었을 테다. 나를 찔러온 사건들 하나하나를 핑계로 더 망가진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뭔가 자신을 탓하고, 상대를 탓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후회하고. 그렇게 술이나 마시면서 망가져 가는 삶. 기실 그런 시간들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그 '망가진 삶'이라는 게 그저 어떤 가능성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저 다른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을 뿐이다. 그 시간들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인생에 내려진 '죽비'로 받아들이는 것. 내가 살아온 삶의 문제, 아니 그 삶의 궤적을 써 내려온 캐릭터의 문제였는지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보는 것.


뭔가 꽤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다. 다만 잠시 멈춰 서서 돌아보는 기회를 가진 것 정도랄까. 매트 위에 드러누워서 내 상태를 가만히 한 번 돌이켜 보는 것 정도나마 시작했을 뿐이다. 그냥 남들만큼도 못한 -100점짜리의 인간이어서, 0점이라도 되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뭐 대단한 글도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좀 나아지는 인간


이런 고민을 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꽤 더 나은 인간이 된 것도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가 발을 밟으면 욱하고, 주식 호가창을 보며 일희일비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하기 싫은 것도 한결같고, 회사에 가면 꼴 보기 싫은 인간 하나 정도 있게 마련이다.


속세를 떠나 깨달음을 얻은 선사도 아니고 성령으로 충만한 인간도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도 아니다. 오늘 하루도 점심은 뭘 먹어야 할지 고뇌하고, 상사의 잔소리가 듣기 싫은 하잘 것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러니까 다만 어제보다 오늘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을 뿐이다. 아니다. 그 또한 욕심이다. 아니 그만한 욕심도 없다. 어떻게 인간이 매일매일 나아지는가. 오늘 공부 좀 했어도, 내일은 술 좀 마시고 뒹굴 수 있는 거지. 오늘은 상냥했다가 하루 정도는 핀트가 나가서 얼굴을 붉힐 수 있는 거지.


내가 아무리 열심히 달려 봤자 우사인 볼트의 발 뒤끝도 못 좇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 달려보는 거다. 다만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멀리 가고, 같은 거리를 가도 어제보다 오늘 좀 더 편안하게 갈 수 있다면, 그렇게 조금조금 나아가다 보면 적어도 무언가는 나아질 것이다.

그러니 나는 다만 내가 될 수 있는 ‘최선’의 인간이 되고 싶을 뿐이다. 내 나름의 ‘최선’이기에 어쩌면 그렇게 해도 형편없을 수도 있고, 기껏 된 게 ‘지상 최악의 인간’ 같은 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근데 뭐, 그래도 그 모양이라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하는 것까지는 해보는 것이다.


그냥 나스닥 차트 같은 삶이면 좋겠다. 가끔은 개떡락해서 좀 못나 보여도 길게 보면 그래도 우상향하는 인간. 흐음...50년간 200배 가까이 올랐네. 이것도 좀 욕심이군.


그럼, 그냥 코스닥 차트 같은 삶…. 은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다. 이건 뭐 발전이 없네...차트가 개판이다. 그래 코스피 정도로 하자.


여튼 이 나이를 먹도록 나는 여전히 내가 커서 뭐가 될지 궁금하다.

가끔은 그런 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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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는 대체 왜 이 모양인가.





P.S 뭔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회차가 너무 늘어질 듯 하여 이 정도로 마무리합니다. 곧 새로운 브런치북으로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