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진짜 작가는 나의 부모님이다. 딸은 그들이 남긴 유산을 기록했을 뿐이다.
어떤 이는 사랑 고백을 오월만큼이나 너를 생각한다는 말로 했다. 오월은 그렇게 가슴이 벅찰 정도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엄마와 나는 그 계절에 전주로 여행을 갔다. 일주일 앞당겨 보내는 엄마의 생일 이벤트였다. 그러나 이렇게 마지막 생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주일 후 엄마는 심장이 아프다고 전화를 하셨고 다음 날 월요일에 큰 병원에 가기로 했는데 일요일 새벽에 119 구급차에 실려 가셨다. 엄마는 그렇게 오월 생일날 돌아가셨다.
“그래도 생일을 보내고 가셔서 얼마나 다행이니?” 고모의 말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식들의 마음을 더 칼로 도려내는 말이었다. 무엇이 다행이란 말인가. 생일 케이크를 먹어서 다행이라는 말인가. 불행 속에서도 기어이 다행이라는 단어를 써서 하는 위로는 결국 살아있는 나를 위한 위로이지 도저히 엄마에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나는 지금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가슴이 쪼여온다. 또렷이 생생하게 들리는 그 말 때문에 명료하게 언어화하지 못하고 몇 시간 망설인다.
“그냥 네 엄마의 운명이셔, 누구의 탓이 아니야.”라는 친구의 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돌이킬 수 없는, 황망한 엄마와 나의 운명 앞에 이름 모를 죄를 용서받기 위해 4년 동안 몸부림쳐야 했다. 엄마의 흔적을 찾아서, 나에게 남은 엄마의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내가 미칠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살았어야 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나는 주변을 서성였고,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