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진짜작가는 나의 부모님이다. 딸은 그들이 남긴 유산을 기록했을 뿐이다.
<산 사람은 살지> 책을 읽는 도중 생각나는 사람은 여러 명이었다. 나의 부모님 이야기 같았다. 책 속의 어머니처럼 엄마도 손이 큰 편이셨다. 엄마는 맏며느리다웠다. 푸짐하게 베풀어야 자식들이 잘 된다고 엄마도 어릴 적부터 배웠나 보다. 할머니, 삼촌, 작은 아빠, 고모네 무려 18명이 명절마다, 제사마다 모였다. 그리고 열심히 조상들에게 비셨다. 어릴 적 나는 잔치가 열리는 것 같아 엄마의 고생은 전혀 모르고 달력에 언제 제사인지 표시도 하며 기다렸다. 그날은 나를 예뻐하는 삼촌들도 보고 용돈도 받고 사촌들이랑 밤늦게까지 놀고 동그랑땡에 식혜도 먹는 날이니까.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조상은 있기는 한 것이냐 한탄을 하시며 엄마는 제사 지내기를 무엇보다도 끔찍이 싫어하셨다. 한 번도 뵌 적도 없는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제사까지 정성껏 지냈는데 그분들이 너무나 일찍 아버지를 데리고 가셔서 아마도 배신 당한 것 같은 기분이셨나 보다. 작은 아빠랑 제사일로 여러 번 싸웠다. 오랜만에 부산에 사는 나의 집에 오셔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제사를 지내야 하니까 올라오라는 전화를 받고 엄마는 화를 내셨다. 이제부터 당신은 제사를 안 지낼 거니까 아들들이 제사를 가져가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그러나 엄마는 시어머니 그늘에서 벗어날 정도로 담대하지 않으셨다. 의가 상하면 며느리 탓을 하는 시집 식구들이 밉지만 자식들을 봐서 또 참으셨다.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면서 결국 서울로 올라가셨다.
어느 날 큰 깨달음을 얻은 듯 말씀하셨다. 너무나 답답해서 점을 보러 갔는데 엄마 이름이 아빠에게 평생 봉사하는 이름이라는 것이란다. 이름이 문제라며 당장 개명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장남인 아버지를 만난 것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빠가 살아계실 때는 참을 수 있는 이유가 분명 있었는데 버팀목이 사라지자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타셨다. 그저 제사 지내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닐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혼자 남은 엄마는 얼마나 허망하고 또 허망했을까. 그때는 결혼하기 전이어서 상상을 할 수도 없었지만 혼자 자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과 혼자라는 외로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남편의 빈 자리는 상당했을 거라 생각이 든다. 그런 엄마에게 따뜻한 말보다는 며느리 역할을 강요한 친척들이 밉다. 그리고 외로웠을 엄마를 많이 이해해주지 못한 나도 밉다.
엄마와의 마지막 여행길에 아빠가 많이 그립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빠랑 여행 갔던 일, 아빠가 노래를 가르쳐준 일 등 사소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남편과 사이좋게, 재미나게 지내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무도 남편 대신할 사람은 없다며 잘 지내라는 유언의 말씀을 남기신 것이다. 목이 메었다. 아빠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엄마의 슬픔은 여전히 커 보였다.
"엄마, 벌써 우리 아빠를 못 본 지 22년이 흘렀네. 그동안 남편 없이 어떻게 살았어? 보고 싶은 마음 어떻게 참았어? 우리 자식들 모두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했지? 진짜 미안해" 말하려다 목이 메어 아무 말 못 하고 눈물을 훔치며 운전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