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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Aug 28. 2023

자유롭게 떠나는 카라반 여행

갑자기 떠나기



토요일 오전 수업을 수요일에 대체해서 오랜만에 토요일 수업이 없게 되었다. 남편과 얼른 캠핑을 가기로 했다. 고친 난방이 잘 되는지도 체크도 해야 하고, 바다가 보고 싶었다. 동해는 좀 머니까 서해 강화도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저녁노을을 보고 싶다.


독서모임 첫 책은 "변신 이야기"이다. 그 두꺼운 책과 노트북, 수첩을 챙겼다. 겨울 캠핑은 밖에서 음식을 구워 먹는 낭만을 즐길 수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아무리 맛있는 진수성찬도 칼바람 앞에서는 무너진다. 그래서 안에서 요리할 수 있는 즉석요리들로 준비했다. 강화도에는 동막 해변과 민머루 해변이 유명하다는 검색 결과를 보고 찾아갔으나 주차장에 캠핑카 주차 금지라는 현수막을 보고 잠시 해변만 둘러보았다. 작고 아담한 곳이나 사람들에게 알려졌는지 겨울인데 텐트를 친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한적한 곳에 카라반을 정착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분식을 한상 푸짐히 차려 먹고 책을 읽었다. 다른 그리스 신화를  읽을 때는 술술 읽혔는데 한 권으로 묶은 방대한 "변신이야기"는 너무나 읽히지 않는다. 노트북을 켜 원고를 수첩에 제목만 적어보았다. 그리고 순서를 정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유산 이야기를 저번에 낸 경기도 히든작가 책과 덧붙여 다시 내고 싶다. 3년 동안 엄마의 부재로 힘들어하던 내가 지금 미래를 바라보게 된 계기도 엄마, 아빠의 연애편지를 통해 소중한 유산이 나에게 남겨져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 읽는 글에 눈물이 났다. 글을 수정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순서만 정하고 복사하고 붙이기 작업만 했다.


 저녁에는 뭘 먹을까 남편이 물어본다. 우리는 가까운 수산 시장에 가서 회를 포장해 와서 먹었다. 반려견 해치가 있어 식당에 갈 수가 없다. 회를 먹고 맛집에 가서 아침에 먹을 빵을 사 오고 산책을 했다. 남편은 승진 소식을 알린다. 3월에 발표가 날 것 같다고 지인이 귀띔해 주었단다. 우리는 축하주를 마셨다. 오늘은 춥지는 않았는데 구름이 잔뜩 낀 하루였다. 아쉽게도 저녁노을을 보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갈매기들 소리만 들었다.


아침에 갈매기 소리에 눈을 떠보니 해가 나있었다. 악, 문을 연 순간 절로 나는 소리다. 바람이 엄청 분다. 커피 한잔을 우선 마시고 천천히 아침을 준비했다. 해치는 어제, 오늘 산책을 가장 많이 한 날이다. 수시로 나가 산책을 시켰다. 때마다 소변을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바람을 맞으면서도 좋나 보다. 햇살은 좋은데 바람이 차갑다. 시골 동네의 한적한 일요일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돌았다. 그래도 9시밖에 되지 않음에 놀랐다. 신기하게도 공간이 시간을 다르게 만든다. 천천히 여유롭게 가는 시간 때문에 2시간이 걸려도 오는 아이러니. 이곳에 무슨 마법이 숨어있는 것일까. 오로지 지금만 생각한 여유로운 여행이었다. 할 일을 싸 오긴 했지만 더딘 속도로 멍하니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해치와 같이 보내는 충만한 시간이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돌볼 시간이 없다는 말도 안 되는 현대 사회, 한 번에 몰아서 시간을 써야 하는 이상한 시대이다. 나는 오늘에 집중했다. 반려견과는 미래를 계획하지는 않는다. 그저 오래 살게 하려고 건강에 신경을 쓸 뿐이지 해치와 계획을 세우거나 무얼 바라지 않는다. 얼마나 좋은 관계인가. 부부와 친구, 심지어 자식도 이런 사이가 되기 어렵다.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해치와 있는 시간은 그저 좋다. 해치는 우리를 무한으로 행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오늘은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마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새들은 엄청 시끄럽게 무리 지어 있다. 왜일까. 천적에게 노출되지 않나. 아. 천적은 헤엄을 치지 못하는구나. 그럼 무슨 대화를 하는 걸까. 우리처럼 수다를 떠는 걸까. 아, 정말 시끄럽다. 우리는 동네 책방 시점을 들리고 수산시장에서 장을 보고 책을 조금 읽다가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낭만으로 가장하지 않은 단거리 편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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